시간과 물에 대하여

책 읽는 우체통

by 이성주

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지금/노승영 옮김/ 북하우스



'원숭이 꽃신'이란 동화가 있다. 맨발로 걸어다니는데 아무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원숭이들에게 꽃신은 애초에 필요없는 거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꽃신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 꽃신을 신음으로써 맨발이 겪어왔던 둔탁한 불편함이 사라지자 원숭이들은 이후에 오게 될 꽃신으로 해서 잃어버리게 되는 가치가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게 된다. 돈을 주고 꽃신을 사지 않으면 안되고 신을 신게 되자 맨발로 걷는 것이 고통이 되는 세계가 오는 것이다. 인간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발견하고 발명하고 개발했지만 우리는 현재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얼마나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문명의 두 얼굴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갖다주지만 댓가는 우리에게 더 큰 중요한 것을 앗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아이슬란드 작가, 환경운동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의 에세이다. 에세이지만 환경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숫자와 사진, 지구 위기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쓴 책들과 비교하여 우리가 지구를 왜 지켜야 하는지 인류가 지구를 얼마나 필요로하는지 가슴으로 읽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한 록스트룀의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와 비교되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책에서 밝혔듯이 100년에 걸쳐 지구상에 있는 물의 성질이 달라질 것들에 대한 회상이고 예견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에 대해 음모론을 제시하기도 하지만(수치상으로 명백한 사실을 이야기함에도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것은 현실적이다.


지난 여름 끝에 나는 휴가차 강릉에 갔다. 과거에 바다를 보고 싶으면 나는 종종 강릉에 가곤 했다. 영동선의 고속버스를 타고 새벽에 출발하면 점심이 되기 전에 강릉에 도착했다. 혹은 친구들과 청량리 역에서 밤 10시가 넘어 기차를 타면 밤새 기차는 달려 새벽 6시 즈음에 강릉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경포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 넓어서 무념무상으로 앉아 있다가 오면 탁했던 가슴 속이 푸른 바다처럼 선명해지고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여름에 다녀온 강릉 바닷가는 모래 사장이 엄청나게 많이 깎여져 내가 상상했던 곳이 아니었다. 모래 사장 입구까지 들어찬 호텔과 카페들이 잠시 앉아 쉬기엔 충분하겠지만 우리 추억 속에 있는 바다의 풍경은 더이상 아니었다.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너의 맨손으로 262년을 만질 수 있어. 할머니가 네게 가르친 것을 너는 손녀에게 가르칠 거야. 2186년의 미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p28


자연은 시간을 그대로 담은 커다란 책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삶의 모습과 지혜를 보고 배우듯이 자연을 통해 시간을 보고 미래에게 말을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온 곳에서부터 앞으로 지구가 가게 될 미래에 대해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찾아간다. 특히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이 땅과 물의 기원에 대해서 듣는다. 왜 우리가 이 땅의 소중함을, 지구의 종말을 막아야 하는지를 찾아나선다. 많은 것을 계량화하고 경제학의 논리로, 편리와 행복을 가장해서 지구를 황폐하게 하는 인류에게 이런 식의 발전이 결국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가에 대한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질문은 끝이 없이 이어나가야 할 일이고 이젠 문명이란 이름으로 지구를 해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다. 그것이 일부 자본가들의 배만 불릴 수 있는 일에 지나지 않음에도 말이다.


내 목숨이 위험에 처하고 나의 땅과 후손이 위험에 처하면 무슨 잏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것, 이건 의무 아닐까? 어떤 말로 이 세상을 정의할 수 있을까?p74


어쩌면 우리는 개인 자격으로는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감각을 전달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어쩌면 과학자들도 딴 사람들이 이해할 때까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p79


북유럽 신화에서는 서리에서 생겨난 암소 아우둠라로부터 세상이 시작됩니다. 소의 몸에서 네 줄기 젖의 강이 흘러나와 세상을 먹여 살립니다. 이 이야기는 티베트와 카일라스산 이야기를 놀랍도록 빼닮은 것 같습니다. p115


저의 믿음이나, 경험, 저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건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롭거나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자신의 삶이 쓸모가 있게 되는 거니까요. 그랗게 해서 저는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저의 삶에서 의미를 찾았습니다. 부자드이 사치를 누려도 만족은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늘 더 많이 바라기 때문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으면,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면-그런 삶은 의미를 잃습니다.p123


빙하의 작용도 이와 같다. 빙하는 시바의 머리카락 같은 산맥에서 자라나 범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물을 붙잡아두고는 모두에게 유익하도록 연중 일정하게 내보낸다.p129


티베트를 차지하는 것은 아우둠라를 차지하는 것이며, 아우둠라를 차지하는 것은 아시아의 주요 물 공급원을 장악하는 것이다.p130


자연에는 목적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참수리도 틀림없이 역할이 있다. 창조의 산물에 대한 모든 공격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p163


빙하의 정의는 '자신의 무게로 움직이는 얼음덩어리'다. 빙하는 반유동체로, 적빙 지대에서 겨울 눈을 모아들인다. 가장 큰 지대는 벨트컨베이어와 같아서, 눈이 내려 집하장으로 모이면 얼음이 분출빙하를 통해 계곡으로 흘러내려와서 녹는다. 건강한 빙하는 평형을 이룬다. 모아들인 눈만큼 물로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빙하는 수입과 지출이 같다. p196


이제 악마가 살점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불현듯 2100년의 전망이 그려진 그래프를 본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안락한 삶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희생시킨 대가다.p229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점점 닮아간다.p234


좌파, 우파, 자유주의를 둘러싼 이념 논쟁이 분분하지만 한 세대가 미래 세0대에 이만큼 큰 피해를 입히고 이만큼 큰 가치를 훔치도록 허락하는 이념이나 법률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정부라면 개인이 남에게 피해를 끼칠 자유를 제한 할 것이다. 수십 년 뒤에 피해를 입힐 것이 뻔한 행위들을 민주주의 체제가 제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오류다. 언제나 기업의 이익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얻으려는 옥망이 바다보다, 대기보다, 전 세계 아이들보다 우선했던 것이다.p282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임을, 발 디디는 곳마다 죽음이 있었다.p283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밀어내고 지구의 미래에 대한 우려에 동반되는 발안에서 달아날 수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죽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가장 끔찍한 폭력 행위가 저질러지는 곳에서도.p291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동안 의미 있고 분별력 있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날에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p311


중요한 불교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물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으며 언제나 움직이고 언제나 변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사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합니다.p312


진짜 신뢰는 공감과 존중에서 나옵니다. 신뢰를 쌓으려면 연대, 개방성, 신뢰, 정직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자비심에서 비롯합니다.p317


제가 사람들에게 늘 말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더, 더를 원합니다. p322


우리의 목적은 요긴하게 쓰이는 것,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지식을 늘리는 것, 세상이 빗나갔다면 옳은 방향으로 돌려놓는 것이다.p335


그건 너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간이야. 너희의 시간은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누군가, 너희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자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시간, 너희가 빚는 시간이란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어. 너희는 하루하루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단다.p354


이 책을 읽고난 후 나는 많은 질문을 나에게 해야 했다. 또 그간 내게 해왔던 혹은 세상에게 해왔던 질문들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왜 신은 세상을 만들고 인간이 이토록 더럽히고 망하게 하도록 놔두는 것인지에 대해서. 인간을 사랑한다면 어째서 어떤 사람에겐 더 큰 시련을 어떤 사람에게는 더 큰 성공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하지만 늘 그랬듯이 그것은 부질없는 질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고 그 안에서 무심하게 나와 타인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방관자로 살면서 스스로가 누구가 다 그렇게 행한다에 자위하면서 망치고 깨트리고 없애는 것에 가담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어느 순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상은 내가 볼 수 없는 곳까지 나를 보는 눈이 있고 내가 판단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행위를 판단하고 처벌한다. 이 책에는 다른 많은 책들이 오버랩된다. 라다크의 모습은 현재 인간들이 바라는 희망이었지만 문명의 이름으로 지워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의 희망이면서 라다크가 문명화되며 잃어버린 행복의 가치는 이미 우리가 오래 전에 우리가 망가뜨린 모습이어서 그들의 미래이며 여러가지를 동시에 떠올리게 했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의 책 내용과 겹치기도 했다. 인간은 현명하지만 어리석고 행복을 지향하지만 불행을 끌어와 쓰고 미래를 살려고 하지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알고 있지만 행하지 못하고 느끼지만 갖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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