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방법

생각하는 우체통

by 이성주

W는 내게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이별을 잘 했다. 같이 미팅을 나가 커플이 된 후 몇달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해사하게 웃으며 내 앞에 나타나 그동안 연애를 했다고 말하곤 했다. 말끔한 얼굴로 '헤어졌어'라고 말하는 그녀에겐 미련이라곤 없어 보였다. 헤어지는 일을 무엇보다 어려워했던 내게 그녀는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처럼 보였다. 이별한다는 것에 어려워한 이유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이별을 고하든 상대가 그러했든 지나고 보면 내 입장에서 늘 남겨진 것과 같은 찜찜함이 남아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떠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21년간 함께 했던 바다를 보내고 결국 남겨진 건 나다. 반려동물을 보내는 일은 어렸을 때부터 힘들었다. 이틀을 살고 간 작은 강아지는 부뚜막에서 따뜻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다음날 작은 검둥 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인간의 무관심과 무심이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처음으로 경험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별은 작은 동물에게서 내가 애착하던 물건에게서 또 사랑하던 사람에게서 점차 크기가 커졌고 마음의 크기도 같이 커져서 이별은 내게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사실 이별이 쉬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글을 쓴다든가 사진을 찍는다든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세히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되었고 그 안의 심리를 분석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그건 모든 사람에게 공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이 이별이지, 결국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슬픔이고 외로움이다.


W의 쿨함은 내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오랜 시간 연락하고 지내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그동안 지냈던 일을 말하는 W에게 나는 부러움 반, 섭섭함 반을 갖고 있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연락 안하고도 멀쩡할 수 있어?"

"잘 살고 있었잖아? 나도 그렇고. 그럼 된 거 아냐?"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그녀는 내가 궁금하지도 않았고 나의 현재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다. 그냥 만나면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그동안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그녀와 다시는 연락이 되지 않아도 그녀에게 나는 아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남겨지는 사람이고.


그렇게 툭하면 연락이 끊겼던 W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을수록 다급해졌다. 그녀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거나 여행을 떠났거나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은 며칠 안에 그녀는 전화를 해왔고 연락이 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끝내 답이 없었고 나는 그녀에게 문자와 장황한 긴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난 어느 날 짧은 답신은 날 어리둥절하게 했다.

"너에게 상처를 받았어. 상처가 회복되는대로 연락할게. 그렇지만 상처가 회복될 거 같진 않아."

친구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지내왔던 믿음에 먼저 상처를 준 건 나였을까. 나는 혼자 고민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녀와의 자잘한 추억들을 끄집어내봤지만 기억은 한계에 도달했다. 나는 나에게 유리하게 기억나지 않은 일을 더이상 캐지 않기로 했고 기다리는 것도 포기했다. 그리고 문득 누구나에게 쿨하게 굴었던 그녀에게도 나처럼 상처받고 혼자 남겨지기 싫고 슬픔과 외로움이 있었구나, 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이별은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남겨졌고 W도 지금 남겨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온전한 쿨함은 없구나. 나는 또 무슨 일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나. 하지만 더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 남았을 때 그런 생각으로 나를 아프게 한 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나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언제나 옳을 수도 있다. 이별하는 이유는 사랑하는데 수 많은 이유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어떤 연예인이 이십 년을 친구로 지냈다면 참 잘 지낸 거예요, 라는 말을 들었다. 삼십 년을 친구로 지냈다면 더 잘 지낸 것이고 그 이상의 시간을 친구로 지냈다면 훌륭한 것이고. 몇 달만에도 친구 관계가 끝날 수도 있는 것처럼. 너무 관계에 얽매이지 말자. 이별은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언제든 찾아오는 것이니. 오늘도 나 혼자 남겨졌지만, 바다가 21년의 삶을 살고 먼저 천국으로 간 것처럼, 나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였던 엄마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것처럼, 세상에서 나를 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잊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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