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읽다

생각하는 우체통

by 이성주

링컨이 실제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40대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정확하다.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란 짧은 소설에서처럼 우린 훌륭한 인물, 존경할만한 인물을 찾지만 실제로 그런 인물을 찾기가 힘든 이유는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세파와 성공이 가져다주는 교만과 어쩌다 얻게 되는 횡재로 인해 변해가는 인간들의 심상이 결국 얼굴에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얼굴은 '얼이 지나다니는 굴'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정확한 말인가. 관상을 믿지는 않지만 또 관상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관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관상을 보는 시기가 나이 어린 청년기의 얼굴로 평가한다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아직 부모의 그늘을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의 얼굴은 어느 누구도 깨끗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가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벗어난 환경이었다면 혹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그 사람의 얼굴을 만든다는 것엔 동의한다. 어느 재벌가에서 사람을 뽑을 때 관상을 보는 사람과 함께 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게 아직 어린 사람이었을텐데 대체 무얼 보기 위해서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얼굴이 신뢰가 가지 않거나 성공이 답보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관상장이는 성숙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진짜로 관상을 보는 사람이라면, 식견이 있고 사람을 보는 혜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섣부른 판단을 유보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자칫 편견처럼 사람을 평가하게 될까봐 사람을 볼 때 조심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사람과 겪는 이러저러한 일들과 눈과 얼굴빛으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게 잘 이뤄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나는 편견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첫인상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있을까. 그럼에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의 눈빛과 얼굴을 보면 대충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특히 눈빛은 더더욱 그렇다. 눈을 피하는 사람, 눈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 눈이 투명하지 못한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신뢰하지 않는다. 눈을 똑바로 보지만 눈에 진실이 배어있지 않고 우습게 보려는 시선, 단점을 찾으려는 시선, 배려보다는 멸시의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의 눈빛에선 장난 같은 빛을 발견한다. 장난을 좋아하는 눈빛과 매사 너보다 내가 낫다는 의식으로 가득한 빛은 다르다. 또 음흉한 눈빛도 다르다. 그런 사람의 눈빛은 신뢰하지 않는다. 말이 얼굴이지만 대체로 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얼굴이 얼 즉 영혼이 지나가는 굴이라는 말이나 눈은 심상을 비추는 거울이란 말에 공감하는 이유다.


가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하는 건 현실에서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비슷하다. 죽음에서 삶을 발견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느라 죽음을 내게서 멀리 떨어진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 그러나 죽음을 일상으로 사는 사람들에겐 죽음을 통해서 삶을 발견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일이 잦아지면서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을 시시각각 느낀다. 질병으로든 사고로든 노환으로든 사람은 삶 속에 언제나 죽음을 품고 있다. 잘 사는 것이 결국 잘 죽는 일이다. 우리 조상들이 '개죽음'이란 말로 표현했던 말 속엔 많은 뜻이 있을 것이다. 사람답게 죽는 일은 무엇일까. 그건 다름아닌 내 얼굴에, 내 눈빛에 다 답이 있는 것 같다. 다만 두려운 건 누군가 내 눈빛에서도 내 얼굴에서도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고 판단할 것이란 사실이다. 나는 어떤 얼이 지나가는 굴을 가졌을까.


선거철이다. 나는 그들의 눈과 그들의 얼이 지나가는 얼굴을 본다. 살아왔던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반성하고 사람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성실한 눈빛과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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