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사람은 싫다

생각하는 우체통

by 이성주

자기의 주장을 하는 사람은 똑똑해 보인다. 그런데 똑똑한 사람이 주변에 넘친다. 자기의 말을 하려는 사람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다 대화가 끊어지면 어쩌냐는 고민은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란 물 흐르는 것과 같아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서는 누구든 이야기를 이어갈 거고 좋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한동안 유명했던 진행자를 어느날부터 보기 싫어졌다. 원래도 말이 많은 진행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진행자는 유달리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어 보였다. 힘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하거나 비아냥 일색이거나 게스트를 우습게 만들고 그걸 웃음의 코드로 삼는 진행자는 그가 얼마나 유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나로서는 불편했다. 말하는 사람의 말을 돕기 위해 추임새 정도만을 넣어주고 상대의 감성에 공감해주는 사람, 그런 진행자를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의 가치가 높아지는 걸 보면 분명하다.


나이를 먹은 사람이 젊은 사람들과 갈등을 겪는 한 가지가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살아온 시간이 많다 보니 느끼고 얻은 지혜가 많을 것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섣부른 행동에서 실수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조언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하다 보니 잔소리가 되고 만다. 내가 그런 걸 하고 있는 걸 발견한다. 일절에서 끝나지 않은 조언을 하는 나는 어떤 부분에선 꼰대다. 나도 실수를 통해 느끼고 배운 것처럼 그들도 실수를 해야 한다.


유미의 세포들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유미가 가장 쪽팔렸던 때에 대해 말해달라는 아주 귀엽고 깜찍한 세포의 물음에 나이 많은 세포가 30대의 어느날 전 애인에게 치기 어린 만용으로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일을 자랑하듯 말하는 유미의 행동을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그 정도 실수는 누구나에게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젊은 날에 입에 담기도 힘든 창피한 일을 한 적이 있다. 친구의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쓸데없이 친구 연애를 돕는답시고 엉뚱한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친구의 묵인하에 했지만) 좋아하는 남자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오히려 엉둥한 행동으로 정나미가 떨어지게 한 적도 있으며 직장에서 실수로 돈이 맞지 않아 내 돈을 집어넣고 나중에 후회한적도 있었다. 찬찬히 계산해 보니 그럴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작은 금액이었고 작은 실수였지만 오래도록 나에게 화가 난 일이었다. 실수는 되도록이면 들추지 않고 잘난 일만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과시하듯 떠벌리는 나는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나는 중요하고 나는 언제나 옳다는 식의 말을 한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대화를 할 때 실수를 해도 순하게 웃어넘기며 '나도 때로 그래'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사람, 등을 토닥거려주는 따듯한 사람이 좋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강압적으로 말하는 사람, 자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끊임없이 나열하는 사람, 사람은 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 내 이야기만을 하는 사람,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주기 보다 내 감정에만 충실한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요즘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흠칫 놀란다.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려면 얼마나 수행을 해야 할까. 오늘의 숙제는 매일 그것이다. 한국인에겐 특히 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나를 봐도 그렇다. 코로나로 힘들어져서 하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 사람들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았더라면 어쨌을까. 그들 주변엔 너무 강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을까. 나도 강한 사람이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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