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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주 Jan 30. 2022

추억의 한 페이지

사색하는 우체통

   이상한 문자 하나를 받았다. 알 수 없는 분이 내 이름을 부르며 사진과 함께 소식을 전한 것이다. 나는 누군지 알 수 없어 누구냐며 물었다. 결국 이름과 성이 같은 조카를 두신 어르신이 잘못 저장한 번호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세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분에게 전화가 왔다. 카톡 사진을 보고서야 기억이 났다면서 6년 전 서유럽 여행을 함께 했던 패키지의 일행분이셨다. 15일동안 여행 일정을 함께 하면서 내 카메라에 관심이 있으셔서 여행이 끝난 후 카메라 구입을 도와드렸던 어르신이었다. 그간 어찌 지냈나면서 예전 블로그에 올렸던 여행기가 참 좋았다며 서로 덕담을 나눈후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다시 들여다 본 그때의 여행기. 아직 내가 40대의 이야기다. 새삼스럽고 그때의 감정이 다시 솟아  오른다. 감정도 나이를 먹나. 이전과 같은 여행에서의 들뜸이 없다. 그때로 돌아가보니 참 좋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잔 뒤 아쉽게 로마를 떠났다. 로마는 잊을 수 없는 도시일 듯하다. 오래 전에 부모님이 로마를 방문해서 내게 사 주신 목걸이가 생각난다.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묵주와 목걸이, 올케에겐 묵주를 주시고 나에게는 목걸이를 주셨다. 잠시 기분이 언짢았는데 그것도 잠시, 부모님은 세상에 없으시다. 이번 여행지는 부모님의 마지막 해외 여행지였다. 어머닌 아버지덕에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었고 서유럽을 마지막으로 그해 가을에 쓰러져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서유럽 여행지는 그래서 내게 의미가 깊다. 피렌체 페루자에서 산 가죽가방은 남편의 여행선물로 부모님이 사오신 거였다. 어머니의 체취가 남겨진 버버리코트도 그때 사오신 옷이었다. 이곳저곳에서 그분들의 지난 흔적을 더듬는다는 착각을 일으켜 의미 깊은 여행이기도 했다. 피렌체는 메디치가문으로 유명하다는데 천재를 키운 메디치가의 안목과 그런 가문의 후원을 입은 천재들의 이야기는 한국에 돌아와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천재란, 그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과 만나야 그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억압적이고 기들여진 천재란  천재가 될 수 없다. 기행을 일삼던 천재들에게 자유롭게 그 예술세계와 정신세계를 꽃 피게 했던 메디치가문이야말로 지금 내가 여행을 통해 만나고 있는 훌륭한 예술작품이 나오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피렌체에 도착해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우피치박물관이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아르노강과 뻬끼오 다리, 바사리의 통로 등등 메디치가문과 관련된 건물이 처음 만나본 곳이다. 그곳은 한국에 도착한 후 티비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메디치가문과 천재와의 관계, 그리고 코드에 대한 이야기, 피렌체를 다녀온 후 들은 그 프로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시뇨리아광장에 위치한 다비드상과 넵튠의 조각상과 거리의 예술가, 피렌체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볼거리가 풍부한 도시였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소설로 더 유명해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과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 앞에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살아있는 이곳이 어떤 이에겐 천국일 것이고 어떤 이에겐 지옥일 것이다. 어쩌면 예술가에게 천국과 지옥을 표현하라고 했을 때 그들의 상상력 속에는 현재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표현되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은 단테의 방황과 그의 걸작, 배움도 배경도 없이 늘 무시당했던 세계를 향해 천재성을 드러냈으나 우울한 초상을 보여주는 미켈란젤로, 모두가 내면에 가진 컴플렉스와 그 광기와 천재성이 아픔으로 다가왔다. 삶은 가끔 어떤 이에겐 고통스러우나 그 고통이 훌륭한 작품으로 승화된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 여행지였다.


 “내 인생의 여정은 폭풍의 바다를 건너

  지난날의 모든 삶의 궤적을 적은 기록부를 내야 하는

  모든 사람이 다다라야 하는 항구에 도달했다네.

  지난날 나를 가두었던 환상은 얼마나 허무했었던가!

  예술을 우상이나 왕으로 여긴 환상이라네.

  환각과 자만심이 나를 망쳐놓은 열망이었다네.

  사랑의 꿈은 달콤한데 영혼과 육신의 죽음은 다가오는구나.

  하나의 죽음은 확실하고

  또 하나의 죽음이 나를 놀라게 한다네.

  나의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나의 마음을 달래지 못한다네.

  이제 내 영혼은 우리를 껴안기 위해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린 하느님의 사랑을 향해 있다네.” -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 당신께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제 양심이 저를 꾸짖지 않는 한 어떤 운명에도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언은 저의 귀에 새롭지 않으니, 운명은 원하는대로 제 바퀴를 돌리고 농부는 괭이를 휘두르게 놔두라

지요." - 단테의 신곡 지옥편 15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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