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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주 Feb 04. 2022

정답은 없다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은 80퍼센트가 우울증을 앓는다. 이누이트족의 일부 지역에선 매년 인구 천 명 중 서른다섯 명이 자살을 한다. 이런 끔찍한 자살률은 그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곳이 신이 금지한 어둠의 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곳은 밤이 오면 석 달씩이나 태양이 뜨지 않는 북극의 땅이니까. 하지만 이누이트족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은 봄 햇살이 찬란한 5월이다. 이누이트족은 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하 40도씩 내려가는 혹독한 기후 속에서, 불도 땔 수 없는 얼음집에서 수천 년을 살았다. 두꺼운 얼음을 깨서 물고기를 잡았고, 물개와 북극곰과 바다사자와 고래를 사냥했다. 북극에서는 얼음 구덩이에 발이 빠지는 작은 실수만으로도 다리를 잘라야 할 때도 있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이누이트족은 그 아찔한 동토를 수천 년이나 견뎠다.

  이누이트족이 사는 북쪽 그린란드에는 나무가 없다. 그래서 이누이튼족은 얼음집 속에 작은 물개 기름 램프 하나만을 켠 채 대가족이 모여 산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체온은 친밀함 이상이다. 체온은 얼음집 안의 거의 유일한 난방시설이므로 사람들의 따뜻함은 더도 덜도 말고 정확히 생물학적 의미로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그들은 유대하고 부대끼고 얽혀서 산다. 그래서 이느이트족은 관대하고, 인정이 많고,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잘 웃는다. 이누이트족은 결코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들 비난하지 않는다. 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지도 않는다. 이느이투족은 불평 자체를 금기로 여긴다. 남에게 뭔가를 강요하는 규칙도 없고 심지어 그런 개념조차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도 않는다. 서툰 동정도 서툰 위로도 하지 않는다. 동정이나 위로 그 자체가 상대방에겐 심한 모욕이 될 수 있으므로 사실 간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니 누가 어떤 상태를 보이든 그저 묵인하며 스스로 견디도록 내버려둔다.

  상대방에 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이누이트족은 아무도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분노에 대해서, 외로움에 대해서, 견딜 수 없는 역겨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누이트족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 각자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 따위를 털어놓아서 상대방에게 짐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이 거친 북방인들은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왔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죽어야 했다. 물개 기름 램프가 흔들리는 얼음집 안에서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거나 사냥 얘기를 하며 웃고 떠든다. 아무도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아무도 서로에게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 얼음집에서, 바다사자와 물개와 고래의 피를 마시고 자란 이 거칠고 뜨거운 사람들은 상냥하고 온순하고 평화롭게 지낸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격정과 우울이 찾아오면 조용히 얼음집 밖으로 나가 혼자서 자살을 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아무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바다 사자의 물개와 고래의 피를 마시고 자란 사람들은 그렇게 죽은다.


                                                                                          - 한낮의 우울 중/앤드류 솔로몬/민음사





  사는 것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살았다. 그래서 부딪친 일도 많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 주장하다 마음을 다치게 한 적도 있고 내가 틀린 것에 대해 지적들은 적도 많다. 나이 먹으면서 사람들은 각자가 자신만의 정답으로 세상을 산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외치고 떠들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게. 환경이, 물리적 억압이 표현할 수 없는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허다한데. 말 많은 사람이 칭찬받으려면 아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그 말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권력이 있어야 한다. 학력이든 지위든,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의 권력으로 기울어져 자기가 옳다고 자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목소리를 낸다. 문득 각자가 품은 정답이 정말 정답일까 묻게 된다.

  어른도 권력의 일종이란 걸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나이 어린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어른이고 싶은 것도 쓸모없는 욕망이란 걸 알았다.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어른들은 쿨하게 젊은이들의 요구나 바뀐 세상에서의 그들 모습에 쉽게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좋은 어른이라는 달달한 꿈에 취해 어려운 질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답을 말했다. 이제서야 고백하자니 그런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어쩌면 이 살벌한 세상에서 체온만을 필요로한 사람에게 나는 같잖은 간섭을 했던 건 아닌가. 우리는 절박한 환경에 놓여있지 않지만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는 또 다른 이누이트족처럼 극한의 추위와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혼자 쓸쓸히 속으로 삭히고 얼음집 밖으로 나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이 시대의 이누이트족들. 그들에게 따뜻한 체온만으로 이 삭막한 겨울을 나게 하고 싶다. 말 없이. 간섭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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