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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주 Dec 21. 2021

도박 같은 도전, 도전이란 이름의 도박

생각하는 우체통

   나의 문학 여행은 중학교 때 시작됐다. 유명 작가였던 국어선생님 덕분에 나는 나의 외로움과 슬픔을 문학에 기대었다. 독자도 없는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배설이었고 위로였다. 친구가 국어선생님을 사랑해서 국어를 더불어 사랑했다. 그녀의 국어 사랑이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내 글의 독자로 이끌었다. 국어선생님의 역량이 참으로 대단하다. 내 유일한 독자, 지금까지 나의 든든한 지원군, 나의 중독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친구다. 나는 여전히 도박 같은 도전을 시도한다. 아니, 도전이란 이름의 도박을 끊지 못하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 나는 일 년간 썼던 글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이야기의 틀을 바꾸고 틀린 맞춤법을 고치고, 때에 따라선 이야기조차 바꿔 응모한다. 그리고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쳐다본다. 달라진 건 아주 멀리서 당선의 소식을 받은 사람들의 축제를 알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했지만 요즘은 같이 공부하는 문우들의 당선 소식을 옆에서 듣고 있다. 그들의 고생 끝의 열매를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주지만 그 끝은 쓸쓸하다. 나에게 도달하지 않는 기쁜 소식,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은 여전히 멀다. 


  문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 인정받기 위해서인가,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인가, 글쓰기에 매료되어서인가. 솔직히 어느 순간 그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꾸만 묻는다. 그리고 자꾸만 역순으로든 그 모든 이유 때문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문학, 미술, 음악이 있겠지만 그것들을 만든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세상에 자랑스럽게 드러내보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자식이 비록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제 몫의 생을 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성처투성이의 나의 문학 속에 있는 인물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친구들이 게임에 열중했을 때도 술이나 담배를 끊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비교적 중독에 쉽게 빠지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일평생 나는 중독되어 살고 있는 것 같다. 글쓰기는 내게 무엇일까. 한국에서의 경쟁이 세계에서의 경쟁보다 더 힘들다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들의 치열한 생존기에 대한 글을 심심찮게 읽는다. 일등에게만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이 치열한 세계에서의 생존기. 다행히 등단한 어느 작가가 문학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한 길을 다양하게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도전이라는 도박을 계속하고 도박 같은 도전을 멈추지 않겠지만 그 다양한 길에 대해서도 도전하고 부딪쳐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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