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일기] 겨우 배추 두 포기가 가져다준 행복

by Helena J

캐나다의 겨울은 유독 길고 차갑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치과 영수증처럼 삭막한 현실이 마음을 짓누르기도 한다.


한국과는 결이 다른 이곳의 치과 비용을 마주하고 나면, 텅 빈 지갑만큼이나 마음 한구석도 쓸쓸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 허전함을 채우는 건 거창한 위로가 아닌, 마트 장바구니에 담긴 묵직한 배추 두 포기와 무 두 개였다.


요즘처럼 고물가 시대에 사 먹는 김치는 간편하지만, 그 가격표를 보고 있자면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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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추 두 포기를 직접 다듬는 수고를 자처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돈 몇 불의 재료비로 누릴 수 있는 풍요는 생각보다 훨씬 근사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다정함을 끓이다 : 소고기 배추 된장국


김치를 담그기 위해 배추를 다듬다 보면, 억세 보이지만 푸릇한 기운을 머금은 겉줄기들이 나온다. 예전엔 무심코 버렸을지도 모를 이것들이 오늘은 귀한 재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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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몇 점을 넣고 구수한 된장을 풀어 푹 끓여낸 '소고기 배추 된장국'. 뜨끈한 국물 한 모금에 치과 영수증으로 얼어붙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버려질 뻔한 겉잎이 주는 가장 다정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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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 수육과 알배추 보쌈


배추의 가장 깊은 곳, 노란 속살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선물로 남겨둔다. 소금에 살짝 절여 아삭함이 살아있는 알배추 속잎은 갓 삶아낸 수육과 최고의 짝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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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하는 날에만 누릴 수 있는 이 '보쌈의 특권'은 살림하는 사람만이 아는 은밀한 즐거움이다.


5리터의 든든한 약속 : 배추김치


그리고 남은 배추들은 빨간 양념을 입어 5리터 김치통을 빈틈없이 꽉 채운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보이는 이 붉은빛은 마치 든든한 보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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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반찬 없는 날, 혹은 입맛이 달아난 날에도 이 김치 한 접시면 입안 가득 즐거움이 번질 것을 알기에 마음이 놓인다.


마음먹기에 달린 일상의 온도


누군가에게는 '겨우 배추 두 포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을 즐기려는 마음 한 자락을 곁들이면, 이 두 포기는 국이 되고, 보쌈이 되고, 든든한 밑반찬이 되어 내 일상을 다채롭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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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치과 진료비에 잠시 흔들렸던 마음은 어느새 김치 냄새 가득한 주방의 온기로 채워졌다.


결국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정성껏 차려낸 소박한 식탁 위에 있는 것이 아닐까.


배추 두 포기가 가져다준 이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 덕분에, 나의 캐나다 겨울은 조금 더 따뜻해질 것 같다.


영상으로 만나는 이야기

https://youtu.be/UrtRemt8Fng


https://youtu.be/AZvVbSWA9J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