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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a J May 26. 2023

아들이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뒷자리에 않은 아들은 나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건넸습니다. 

아들과 이런 대화시간을 가져보는 건 거의 2년 만인 것 같습니다. 


엄마: "당겨줄까?" "잡아줄까?"

아들: "아니" "됐어~"

엄마: "엄마가 발로 밀어줄게."

아들: "이미 당겨놓은 거야. 내가 다!"

엄마: "이것만 잘 맞춰 놓으면 돼, 그렇지?"

아들: "알아~"

엄마: "엄마가 이거 할 테니까 저거하고 있어 줘"

아들: "내가 이미 늘려놓은 건데"

엄마: "어~ 그래." "됐다"

 "이것"이것만 잘 맞추면 돼, 그렇지?"만 잘 맞추면 돼, 그렇지?" "이것만 잘 맞추면 돼, 그렇지?"

텐트캠핑은 번거롭습니다.

출발준비할 때도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싫어야 하고, 또 도착해서도 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손이 많이 가기에 가족이 도와가며 함께 해야지만 서로 즐거운 여행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텐트캠핑을 통해 다시 가까워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들: "아니 아니" "어떡해"

엄마: "엄마가 할까?" "네가 이거 낄래?" "네가 발을 떼고 해서 그래"


아들: "모기 있으면 안 되는데" "아~ 나 모기 엄청 물리는데"

엄마: "하하~ 우리 집에서 네가 모기 제일 잘 물리지"


아들의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까 은근히 눈치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의 모기에 대한 화제로 관심이 넘어가면서 안도의 웃음도 나옵니다. 

아들과 이렇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날이 다시 올 줄은 몰랐습니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큰 인내심을 필요로 합니다.

아이를 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상대하라고는 하지만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아이들이 서로 다투고 일러대고 그리고

부모말 안 듣고 속 터지게 하면 말처럼 행동이 쉽지가 않습니다.


솔직히 그 말은 그냥 문장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아이들은 항상 부모에게 있어서 약자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아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대하는 것은 인격적이지 못할 때가 종종 있기도 했습니다.


우리말에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저와 제 아들의 모습이 꼭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내 인내심을 가지고 한마디라도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키웠었더라면 

지금 이 아이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청소년이 된 자녀와 관계가 서먹해지는 것은 아마도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거나

어릴 적부터 일방적인 의사소통만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도적으로 그랬던 건 아니지만 아이의 말을 듣고 있으면 화가 날 때가 많아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중단시켰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화가 난 것은 그 아이의 감정이었고, 

그런 아이의 감정만을 읽어준 후 그 감정을 어찌 처리해야 올바른 것인지를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가르쳐 주어야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몰랐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동안은 정말 부모는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하나 봅니다.

그리고 잊어버리지 않게 배운 것이 생활습관에 배어 나올 수 있도록 

반복해서 기억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하나 봅니다.


저 역시도 살아온 반백 년 동안의 언어습관이 있는데

이것을 고치는 것은 한 번에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캠핑에 나와서 해 먹는 밥은 맛있습니다.

집에서는 아들과 저녁 함께 먹기 어려운데 

캠핑 나오니 단둘이 오붓하게 대화 나누며 저녁도 먹을 수 있어서 좋네요.


아들은 바다낚시 할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습니다.

엄마를 따라 캠핑을 온 이유이기도 하지요.


아들은 낚싯대를 바다로 던 진 후 물고기가 있는지만을 바라보고

저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서로 바라보고 있는 곳은 다르지만 우리는 함께 있습니다.


낚싯대를 던질 때마다 저보고 저 멀리 가 있으라고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해대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들의 말투에서 저의 말투가 들립니다.

저의 말투는 우리 부모님의 말투와 똑같을까요? 


알게 모르게 닮고 싶지 않고 따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똑같아지는 것이 가족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격이 형성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을 오랫동안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 앞에서는 냉수도 함부로 못 마신다'라는 말이 있나 봅니다.

가정에서의 일상이 아이들에게는 인생의 체험학습장입니다. 


텐트로 돌아가기 전에 캠핑장 앞바다 산책을 하는 중입니다. 

제가 물을 좋아해서인지 아들도 물을 좋아합니다.

우리 가족은 물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 바다를 가장 좋아합니다.

아들은 물수제비를 해봅니다.

몇 년 동안 운동 안 하고 지냈던 흔적이 나옵니다.

가벼운 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어깨 근육에 무리가 왔는지 아프다고 하네요.


자연생물 관찰을 좋아하고 갯벌을 좋아했던 아들

온라인세상 속에 살게 되면서부터 그런 관심사를 모두 잊고 지냈던 아들인데

다시 오래전 아들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합니다. 


아들: "이거 한번만 하고 끝낼래"

엄마: "해봐 한번 그러면"

아들: "엄청 깊게 파야 해"

아들: "어어 뭐가 움직여"


코펠로 밥을 할 때 무거운 돌을 얹어 놓았던 것을 저의 부모님께 배웠습니다.

생각도 해본 적도 없고 기억을 떠올리며 산 적도 없는데

코펠로 밥을 할 생각을 하니 정말 자연스럽게 어릴 적 그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과연 비가 올 것인가?"

아들: "안 올 것 같은데" 


휴식 같은 잠을 자고 있는데 빗방울 소리가 들립니다.

텐트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엄마: "갈비는 이렇게 뜯어야지"

아들: "몰라"

엄마: "음~ 맛있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 다시 한번 낚시를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텐트 안에만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입니다.


바닷바람이 거셉니다.

과연 이번에는 아들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요?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이른 아침잠에서 깨었습니다.


아들이 저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거의 2년 만에 아들로부터 들어보는 '엄마'라는 단어입니다. 

새벽낚시를 가기 위해 자고 있다고 생각한 저를 깨우기 위해 아들은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어제는 물이 빠져서 갯벌이었던 바다가 오늘 아침에는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물 빠지는 시간을 보니 오늘 낮시간이 가장 많이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낮시간에 다시 한번 이 바다를 들리기로 했습니다.


딱따구리는 실제로는 처음 봅니다.

저를 의식한 딱따구리는 한 번에 날아가지 않고

만화 속에서 처럼 통나무 뒤쪽으로 조금씩 이동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입니다.


출발 준비를 안 하고 텐트 안에서 온라인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 때문에 기분이 약간 언짢아졌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감정을 추스릅니다.

자연카페에서의 커피맛은 꿀맛입니다.


결국, 텐트철수를 하는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은 다시 냉랭합니다.


아들: "없어" "오~오~ 게다"

          "이건 굴인데"

이것저것 탐색을 하며 한창 신이 난 아들입니다.

대자연의 생물들이 우리 두 사람의 기분을 다시 전환시켜주고 있습니다.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사진을 찍어 어떤 생물들인지 바로바로 검색을 해 봅니다.

참 편리한 세상입니다.


우리는 빅토리아로 돌아가기 전에 나나이모에 잠시 들렸습니다.


갈매기가 크랩잡이를 하는 사람의 크랩미끼용 닭고기가 들어있는 팩을 가로챘습니다.

옆에 다른 갈매기가 와서 같이 먹자고 하는 것 같은데

이 갈매기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옆에서 기회만 보고 있던 갈매기가 본격적으로 가로채기를 시도해 봅니다.

두 마리의 갈매기는 이 닭고기를 사이에 두고 싸움이 붙었습니다.

정말이지 한참이나 이렇게 두 마리의 갈매기가 싸웠습니다.


끝이 이렇게 마무리될 때 까지요 

하하하


영상으로 보는 이야기(캐나다 빅토리아 캠핑 이야기)

https://youtu.be/akhsJ0S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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