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ena J Nov 27. 2023

죽고 싶다는 말의 의미는

버티며 살게 해 주었던 힘

얼마 전 상담 선생님이 내 작은 아들의 자살을 걱정하는 말을 하셨다.


우울증으로 학교를 안 다니고 있는지 어느덧 햇수로 3년이 되어가는 아들.


내 앞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한 적은 없지만


스크린 타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과의 집안에서 와이파이와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3년 전 그때에는 아이들은 자살과 관련된 노래를 정말 많이 듣고 지냈다.


일부러 나 들으라고 그렇게 음악을 틀어놓았었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라고 난 선생님께 답했다.


"제 아들은 그럴 용기가 없어요"

자살은 충동적으로 하는 거지 용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생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긴, 캐나다 사시면서 유학, 이민한 2세 아이들 상담생활을 길게 하시고 계셨고

그중에 자살한 아이들도 많이 경험하셨기에 걱정하셨다고 하셨다. 


얼마 전 늦은 저녁 집안으로 돌아온 아들의 행동이 조금 의심스러웠던 날이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잠바를 입고 가방을 멘 채로 

내가 있던 주방으로 와서는 물컵을 집어 들고 다이닝룸으로 향했었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그렇고 있었다. 


아들의 분위기가 이상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들도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었다. 


"밥 먹어"라고 말했지만 "밥맛없어"라고 말한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간 아들 뒤로는 

내가 잠이 안 올 때 먹는 수면보조제 '멜라토닌'통이 꺼내져 나와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한주먹이나 비워져 있었다.


아들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아들은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누워 있었다. 


"멜라토닌 다 먹은 거야?"

"아니"

"그거 먹어도 안 죽어" "병신만 되지"
"그러니까 내놔"


몇 번이나 멜라토닌 가져간 거 내놓으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꼼짝없이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방밖을 나와서도 불안한 생각에 잠을 푹 잘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다이닝룸에 있던 멜라토닌병을 내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나는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들의 방으로 먼저 향했다.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아들의 숨이 쉬어지며 움직이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후, 한주가 지난 지금 아들은 멀쩡하다.


아마도 눈뜨자마자 자신의 안부를 먼저 살피는 엄마의 마음이 아들에게는 

'엄마에게 난 필요한 존재이구나'라고 전해져서였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난 정말 우울한 성장기를 보냈다.


평범한 가정에서 우울한 감정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성장기에 지속적으로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스트레스가 대학입학을 하면서 그 우울증으로 왔었던 것 같다.


학과 선택에 있어서 1 지망에서 탈락하고 입학을 위해 선택했던 전공이라 학교 생활이 즐겁지가 않았었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그래 죽어봐"라고 말했던 아이도 있었고,
"그날은 네가 정말 이상해 보였어, 그래서 OO보고 너 따라가 보라고 했었어"라고 말해주었던 선배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죽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난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반복적으로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에게 '죽고 싶어'란 말은  '난 너무 외로워요'라는 간접적이 표현이었던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