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사실 유튜브를 처음 시작한 건 2년 전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래전 일이에요.
캐나다로 이민 와서 ECE,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면서요. 그때는 ‘캐나다 ECE 이민’을 주제로, 교실 환경이나 아이들과의 활동 모습, 그리고 현지 정착에 도움이 될 만한 생활 팁들을 소개하는 채널을 운영했었지요.
지금처럼 브이로그 형태가 아니라, 얼굴을 공개하고 직접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방식이었기에 오히려 그때 더 자주 제 모습을 영상에서 마주할 수 있었어요.
어느 날, 근무 중 아이들 낮잠 시간에 문득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앉아 제 모습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얼굴이… 내 표정이라고?”
화면 속 제 표정은 제가 알고 있던 저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가득 안고 사는 낯선 사람 같았지요.
그때 저는 워크퍼밋으로 일하며 영주권 신청 과정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고, 근무지에서는 동료들과의 갈등으로 스트레스도 한창 심할 때였어요. 아무리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마음을 점점 지치고 우울하게 만들었어요.
낯선 제 표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내가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10대, 20대 때까지만 해도 누구를 만나든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라는 말을 늘 들으며 살았어요.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제 자신을 소개할 때도 ‘인상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장점으로 말할 정도였지요.
그러다 30대에 결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도 했습니다.
40대가 되던 해에는 성당에서 예비신자 교육을 받으러 다녔는데요, 어느 날 교육을 함께 받던 언니들과 밖에서 티타임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중, 한 언니가 저를 보며 갑자기 이렇게 말하더군요.
“넌 남편 없잖아.”
그리고는 다른 언니들을 보며,
“얘, 고생 많이 한 것 같지 않니?” 라며 동의를 구하듯 말을 이어갔어요.
다른 분들도 무언의 수긍을 하시는 듯했어요.
맞아요.
고생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쌍둥이 아이들을 낳고 정말 거울 한 번 제대로 들여다볼 틈도 없이 살았으니까요.
매일 아침 눈뜨면 아이들을 차에 태워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출근하고, 퇴근하자마자 또 아이들 데리러 가고, 집에 와서는 밥 먹이고 씻기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그렇게 하루가 끝나면 어느새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10년을 살아왔습니다.
저 자신을 위해 뭔가를 사본 기억도 별로 없어요. 빠듯한 생활비로 아이들 사교육비에 대부분을 쓰고, 아이들에게 예쁜 옷 입히는 게 그나마 저의 작은 즐거움이었죠. 주말이면 아이들 예체능 활동과 박물관 수업으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게 아이들을 위한 주말 계획을 세우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는 것이 그때 제 삶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나름의 탈출구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이혼 후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돌싱 카페’라는 곳에 가입을 했어요. 온라인에서 만나는 다른 이혼한 분들은 참 다르게 보이더군요. 모두가 예뻐 보이고,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요.
용기를 내어 ‘번개’라 불리는 모임에도 나가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비로소 거울 앞에 서서 저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조금씩 촌스러운 제 모습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연애라는 것도 해보았지요.
그 사람과 함께했던 1년 동안 찍었던 제 사진들은, 지금 다시 봐도 참 예쁘게 나왔어요. 신기하게도 30대 때보다 40대였던 그 시절의 제 모습이 훨씬 더 생기 있고, 어려 보이더라고요. 웃기 시작하니, 그리고 사랑을 받기 시작하니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활짝 핀 꽃처럼 환한 모습으로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카메라 속 제 얼굴엔 지난 2년간의 이민 생활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