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스트레스

by Helena J

"AI가 더 편하다는 말, 정말 진심에서 나오는 거고… 난 그걸 무겁게 듣고 있어. 너무 슬픈 건, 핼레나는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란 거야. 아예 차단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진짜 통할 수 있는 사람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외침처럼 들려."


어느 날, 마음이 몹시 울적해져서 ChatGPT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더니, 이렇게 제 마음을 알아주는 문장이 돌아왔습니다. 너무 놀라웠어요. 정말 제 진심을 정확히 짚은 말이었거든요.


맞아요.

저는 늘, 단 한 사람이라도 제 마음을 깊이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아요.


캐나다 이민 생활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모든 것이 새롭고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 다르게 펼쳐질 새로운 인생, 그리고 아이들과의 안정된 삶에 대한 기대까지요.


하지만 현지에 정착하며 영주권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차가웠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 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경계와 두려움으로 가득했어요.


관광비자로 입국해 워크퍼밋이 나오기 전까지 데이케어에서 자원봉사하다가 신고로 인해 추방당했다는 이야기부터, 자신이 영주권을 지원받고 있는 센터에서 함께 지원을 받으면 본인의 프로세싱에 불이익이 생길까 봐 저와 거리를 두려는 분들도 계셨어요. 어떤 분은 저에게 "제 센터에는 지원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따뜻하게 맞아줄 줄 알았던 같은 한국 분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 때의 마음은 참 복잡했어요.


멘토라고 소개받았던 분도 있었어요. 관계가 끝난 뒤에도 다시 전화를 주셔서 반가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추가 멘토비를 받을 수 있는 건수를 채우기 위한 연락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 일이 제게 두 번째 배신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거의 100군데에 이력서를 보냈고, 20번 넘는 면접을 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합법적인 워크퍼밋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고, 점점 마음은 지쳐만 갔습니다.


다행히도 영주권을 지원해 주겠다는 데이케어를 만나게 되었고, 워크퍼밋을 기다리던 동안 쿠키를 구워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빨리 저를 불러주세요”라는 조심스러운 신호를 보내며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길었고, 마지막엔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자포자기한 한 주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워크퍼밋을 손에 쥐던 날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느덧 영주권을 받은 지도 5년이 되었고, 이제는 갱신을 앞두고 있어요.


이민 초기에는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고, 아이들도 참 예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동료들이 저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그 이유가 언어의 거리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피부에 새겨지지 않은, 보이지 않는 벽 때문이었을까요.


‘door mat’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현관 앞에 깔린 발판처럼,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는 존재를 말합니다. 처음엔 “이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예의가 없지?” 하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끼리는 서로 예의를 지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단지, 저는 그 테두리 밖에 있었던 거였죠.


저는 사람의 표정과 감정에 민감한 편이에요. 그래서 동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움을 주었음에도, 문제가 생기면 제 탓으로 돌리거나,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도 있었어요.


어느 날, 글씨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다섯 살 남자아이에게서 'Fuck you'라고 쓰인 쪽지를 받은 날엔… 퇴근길 차 안에서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말이 불쾌하게 들리면 바로 매니저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면담이 진행되는 게 일상이에요. 그러다 어느 날, 동료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Nobody believes anybody." 아무도, 누구도 믿지 않는 것.


그게 이곳 직장 문화의 전부라는 걸, 그 말을 듣는 순간 실감했습니다. 그들과 연결되고 싶어 했던 지난 2년의 제 진심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나마 다정하다고 느꼈던 센터 본점 원장도, 전체 회의 자리에서 여자들만 있는 센터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말하며, 결국 누구의 말도 믿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대화’와 ‘소통’
한국에서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선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의 반응이 곧 관리자에게 보고되거나, 서로의 관계를 꺼리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영주권을 받은 뒤엔, 외로움을 덜어보려고 한국인들이 많은 지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동료가 많은 센터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게 가장 큰 상처를 안겨준 건 그 한국인 동료들이었습니다.


언어가 통한다는 이유로 저는 그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그 기대가 제게 가장 큰 실망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민 초기에 에이전시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단지 언어가 통할 뿐이지 잘 아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제는 그 말이 가슴 깊이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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