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을 축하해

지우려는 기억, 남겨지는 흔적

by Helen J

3월은 얄궂은 계절이다.


마음은 한껏 봄처럼 기운을 불어넣고 씨앗을 틔우려는 각종 봄 씨앗들로 재채기도 하게 하면서 막상 긴장을 풀기엔 너무너무 춥다. 3월 하면 연초록색일 것 같은데 왠지 회색의 도시를 보는 게 헛헛하다.


누가 이때부터 봄이라고 공언한 것도 아닌데 3월이 봄처럼 느껴지는 건 새 학기 시작이 3월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굳이 학교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여기저기 입학식 꽃들을 판매하는 매대나 새 학기 용품 할인 광고가 심심찮게 인터넷 배너로 뜨며 봄 같은 새 학기의 시작을 알린다.


특히 올해는 나도 그 입학식 문화 대열에 가까이에서 3월을 경험했다. 감계무량하게도 첫째 조카가 올해 초등학생이 되어서, 옆에서 책가방 챙기는 것도 구경하고 입학선물로 뭘 사줄까 같이 오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큰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첫 번째 하교길에 내가 조카를 데리러 가 달라고 언니의 부탁을 받았다.


“이모, 혹시 내가 일찍 나올 수도 있으니까 조금 일찍 와서 나 기다려 줘야 돼.”

아직 낯선 교문 앞에 나왔을 때 내가 안 보일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조카가 옆에서 계속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공주님이 일찍 뫼시러 오라는데 일찍 가야지. 충실히 명을 받드는 기사의 자세로 안내된 하교 시간보다 30분 일찍 교문 앞으로 갔다. 내가 1등이다. 그렇게 텅 빈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아이 가족들이 하나둘씩 교문 앞에 모여든다. 어떤 분은 교문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경비 분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것은 마치 수능시험을 마친 고3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의 열기와 같다.


그 분위기 속에 서 있으니 잊고 있었던 초등학교 입학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날도 이렇게 좀 쌀쌀하고 구름 낀 날씨였다. 세세한 사항은 기억이 안 나지만 유치원처럼 놀이방이 없고 각자 지정된 자리에 앉아서 계속 있어야 한다는 데 놀랐던 건 생각이 난다. 그리고 유치원보다 애들이 너무 많다! 집에서 좀 거리가 있던 유치원에 다니던 나에게 익숙한 친구들이 안 보여 좀 의기소침해졌다. 얼굴은 알고 지내던 같은 동네 남자아이가 같은 반이 되었는데, 쟤도 의지할 만한 대상은 아니다. 잠깐이었지만 이렇게 난 옛노래를 듣고 잊고 있던 감상에 빠진 사람마냥 멍했다. 시끌시끌 다들 모여든 교문 앞 소음을 풍경삼아 나 혼자 내면세계로 유리되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모!!”

하고 손을 흔들면서 분홍색 공주님이 나에게 온다. 나는 조카의 학교에서 첫날이 어땠을지 궁금하고 또 약간 왠지 안쓰러워졌다. 모든 힘든 건 내가 다 대신해 주고 싶은 공주님이 이제 학교에 가서 혼자 이런저런 것들을 해 가야 하다니.


“이모, 같은 반 애들 다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했어. 학교가 너무 길어! 근데 내 책상이 있었어.”

나를 봐서 신나서 재잘거리는 조카를 보고 내심 안심도 되었다. 그런데 감상에 젖은 내가 괜히 새로 소화할 것도 많은 아이의 하루에 불안한 색 하나를 더할까 걱정도 되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예민하게 보호자의 감정을 캐치한다. 아이도 느꼈을 내 구름낀 기분을 설명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는 게 아이를 더 불안하게 할까도 싶었다. 난 약간의 개그 모드를 섞어 열심히 말해줬다.


“이모는 처음에 학교 갔을 때 유치원 친구들이 같이 없어서 긴장도 됐었어. 놀이방 없이 자리에 앉는 건 괜찮았어? 난 장난감 없어서 이게 뭐냐고 했었는데. 이모는 처음에 화장실도 혼자 잘 못 갔어. 낯설어서.”

조카는 이런 내 반응이 웃긴지 까르르 웃는다. 항상 내가 과장되게 표현하면 조카는 이렇게 호탕하게 웃곤 한다. 심지어 ‘화장실 가고 싶을땐 손 들고 선생님한테 말하고 가면 된다’며, 초등학교 1일차인 공주님이 나에게 초등학교 생활법 명강의를 해주신다. 이렇게 이런 저런 기억을 나누면서 조카의 오늘 첫 하루의 기억과 내 기억의 교차점과 차이점을 같이 구분해 봤다. 오는 길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공주님에게 카페에 들러 화장실 명을 받들고, 핫초코와 쿠키를 먹고 집에 오는 것으로 내 임무는 끝났다.


고작 한 시간 남짓한 보호자 경험이었지만 새삼 육아의 세계에 있는 우리 언니를 포함한 모든 엄마아빠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육아라는 건 자신이 지난하게 지나온 모든 성장의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가장 소중한 자신의 피붙이를 앞세워 다시 경험하게 되는 것을 포함한다. 그게 긍정적 기억이었던, 부정적 경험이었던. 마음을 써서 만나는 모든 순간들은 힘이 든다.


최근 한 배우가 자신의 육아 과정을 담은 일상을 공개했다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나도 생각이 많아졌었다. 그 배우가 얼마짜리 옷을 입는지, 그게 어느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인지는 난 관심이 없다. 다만 한 토크쇼에서 '비 오는 날 생계 때문에 자신을 한 번도 데리러 오지 않았던 엄마를 생각하며, 자신은 비 오는 날 가장 먼저 아이를 데리러 가는 엄마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그 배우의 말이 마음에 계속 잔여물처럼 남아 곱씹어 보게 된다.


육아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만났던 모든 순간의 감정을 마주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많은 보호자들이 자신에게 불쾌감을 주었던 기억들을 자신의 자녀에게서 지우고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이것은 자신이 힘들었던 그 과정을 굳이 자녀에게 주고 싶지 않은 자녀에 대한 보호이기도 하지만, 같은 상황을 반복함으로서 그 때에 어렸던 자신이 느꼈던 느낌을 재경험하고 싶지 않은 자신에 대한 보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쾌한 감정을 준 경험을 자녀에게서 애써 소거시키면 전체 감정기억이 0이 될것 같은, 산뜻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수학의 원칙은 육아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보호하려는 모든 노력은 어떤 것은 위험하다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부모의 결핍은 자녀에게 과잉을 낳는다. 역설적이게도 어떤 기억을 지우고자 한, 마주치지 않고자 한, 느끼지 않고자 한 보호자의 몸부림은 ‘보호자의 과잉과 불안’이라는 기억으로, 정확히 양음각이 반대되어 찍힌 도장 같은 낙인으로 자녀에게 남겨진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양음이 바뀌었을뿐 양육자가 그토록 지우고자 했던, 그의 유년시절과 같은 메세지다.


이렇게 하는 것이, 또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육아에서 얼마나 힘든지 짐작하기에, 초기 감정이라는, 가끔 우산없이 쏟아지는 비처럼 예상치 못하게 자신을 쓸어내리는 기억을 재경험하게 하는 양육의 과정을 겪고있는 모든 엄마아빠를 존경하고 응원한다. 하지만 나는 자녀와 자신에게 어떤 감정적 경험을 주지 않으려는 “보호”자인 부모보다, 부모부터 성장과정에서 자신에게 어려웠던 감정을 거뜬히 재경험하고 이로써 자신도, 아이도 키워내는 “양육”자가 되길 응원한다.


이런 유연함만이 자녀가 살아가며 만날 어떠한 감정의 홍수도 거뜬히 항해해 갈수 있는 능력을 키워갈수 있게 한다 믿는다. 그 과정이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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