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가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정신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나를 이렇게 소개하면 마치 내가 뱉은 그 정. 신. 분. 석.이라는 단어하나가, 그 순간 그 대화 장소를 그 엄중한 분석장소로 옮긴 것 같은 작은 역동이 시작된다. ‘오 좋은 거 공부하시네요’라는 인사치레 뒤에 내 소개를 듣고 상대는 보통 두 가지 감정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그럼 지금 저를 분석하고 계신가요?” 라며 보이는 방어적 태세다. 마치 자신을 처음 본 내가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미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한다. 이때에 별생각 없이 있던 나는 상대로부터 경계해야 할 외부인으로 선 밖으로 두어지는 경험을 종종 한다. 한편 또 이런 사람들은 조금 친해지면 내가 무언가 자신에 대한 영험한 통찰을 말해주길 기대하며 호기심을 보인다. 슬쩍 만나자고 해서 연애상담을 하거나, 자신의 가족사를 털어놓기도 한다. 이 반응은 국, 내외 만났던 대부분의 분석가들이 공감하는, 말하자면 문화권을 뛰어넘은 ‘분석가에 대한 보편적 반응’이다.
두 번째는, 이는 한국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정신분석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라고 의뭉한 태도를 더해 묻는다. 뭔가 내가 어떠한 큰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정신분석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이다. 처음 만난 나에게 ‘어떠한 큰 상처’가 이미 있다고 상정하고 들추고 싶어 한다. 뭐 그런 드라마틱한 얘기 없는데... 지어내기라도 해야 하나.. 내가 말하는 이유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너무 순한 맛이다. 그들은 빨리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면 ‘아 지금 말하기 어려우면 좀 더 친해지면 말해달라’며 선심을 쓴다. 그때의 내 곤란해하는 표정 또한 상상도 못 할 큰 상처의 근거일 거라 믿는다. 마치 ‘사지를 잃고 태어나 일어나는 것 만으로 희망을 증거 한다는 닉 부이치치’처럼, 내가 심리적 불구를 경험하고 정신분석학으로 일어나고 있는 정신승리의 증거인 듯 대한다.
나는 이 반응들이 정신분석학이 가진 학문의 본질적 특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의식에 대한 탐구이다. 무의식으로의 접근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사람들은 자신의 무의식에 문을 두드리는 학문 명에 경계태세를 강화한다. 마음의 자물쇠를 더 단단히 걸고, 뭔지 모를 불안은 상대방의 것일 거라 쓱 밀어 넣는다.
마치 매일 마주치거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전애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서랍 깊은 곳에 보관하듯, 우리는 살아가며 가지게 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 사이 스스로 자신의 것이라 소지하고 다니기 어려운 것들을 무의식에 층위에 보관한다. 이것은 강력한 보호체계다. 가장 거짓말을 잘하는 방법은 자신이 거짓말하는 내용을 스스로 믿는 것인 것처럼. 실재하는 생각과 감정을 무의식이란 서랍에 두고 그것들은 나에게 ‘없다고 의식’한다. 이로써 무의식에 보관한 것들이 일으키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어쩔 수 없이 정신분석이란 학문은 그 학문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무의식의 서랍에 꽁꽁 숨겨둔 자신의 이야기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정신분석학은 그래서 두렵고 불편한 기분을 일으키는 학문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정신분석가는 그런 내면적 불안을 반영한 죄로 종종 경계나 투사의 대상이 된다. 무의식이란 금기의 공간에 절절히 다가간 용사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의 기준일 뿐, 우리가 서랍 속에 묵혀두고 꺼내보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이 덜 가치 있거나 스스로를 해치는 것들은 아니듯 정신분석의 과정은 어찌 보면 숨겨두었던 자신의 반짝반짝한 재료들을 바라보고 통합해 가는 과정이다. 나는 이 점이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글로 다 담아야 할지 모르겠다. 정신분석에 현장에서 내가 매일 발견하는 그 다양한 조각들을 생각하면 신이 나고 또 말하는 속도가 내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답답한 기분도 든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가 경험한 정신분석은 비밀스러운 신비나 상처투성인 승리보다는 ‘자신만의 종합 예술과정’이다. 의식과 무의식세계에 흩트러진 자신의 모든 조각들을 모아 더 온전한 내가 되고자, 분석가와 함께하는 '낭만의 협업'이다.
정신 분석에 대한 오해를 넘어, 이 학문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해 앞으로 써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