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ke Form (상담 접수 양식)
내담자를 처음 만나기 전, 보통의 경우 내담자와 처음 접촉은 Intake Form이라 불리는 차트를 받아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상담 외 공간에서 내담자를 만나 Refer 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내담자는 분석가를 찾기 위해 센터에 연락하고, 이때 전화를 받은 접수자는 내담자의 언어로 이름 등 개인정보를 Intake form에 기록한다. 이것은 분석을 위해 처음 행해지는 내담자의 자기 공개이다.
이 Intake form은 비록 문서형태로 분석가에게 전해지지만 내담자의 감정정보를 포함한 꽤 많은 스포일러를 분석가에게 전달한다. 이것은 영화를 관람하기 전 둘러보는 예고편과 같다. 관람 후 돌아보면 예고편을 구성한 각 분절적 장면들 하나하나 주요 장면이 아닌 부분이 없듯, 각 항목에 따라 분절적으로 구획되어 전달되는 내담자에 대한 정보들은 이후 세션에서 탐색되어야 할 주요 정보들을 포함한다. 내담자들은 이름 등 필수 기입해야 하는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인종, 성별 등 다양한 추가 질문항목에 응답할 것인가, 응답하지 않을까를 선택하고 객관식 항목엔 어떤 보기에 자신을 위치 시킬지 등 여러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로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곧 상영될 [자신의 정신분석이야기]의 예고편에, 본편 관람 전 어떤 정보를 주요하게 두어야 하는지 분석가에게 힌트를 준다. 어떤 정보는 강조하는 것으로, 또 어떤 장면은 굳이 생략하는 것으로 그 주요도를 작은 형식 하나에 담아 내어 준다.
그중에 내담자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이 생각하는 분석을 시작하고 싶은 이유나 증상’을 간단한 언어로 설명하는 항목은 보통 분석가가 주요하게 체크하는 항목이다. 이때 ‘분석을 시작하는 내담자의 이유와 증상을 설명하는 언어’는 섬세함이 부족한, 뭉툭한 형태를 띤다. 내담자는 보통 자신의 감정을 자세하게 표현할 언어를 분석 초반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어떠한 심리적 불편감이나 무언가가 삶에서 빠졌다는 느낌등을 우울, 불안, ADHD, 공황 등 자신만의 진단명에 간단히 명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흥미로운 건, 이 진단명들을 보면 요즘 어떤 진단명이 미디어에서 많이 노출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기마다 ‘핫한’ 진단명은 세태를 반영해 수시로 바뀐다. 이 진단명에 비추면 그게 내 증상 같기도 하고, 저 진단명이 혹여 내 건 아닐까 두려워하는 그 기분으로 내담자들은 자신의 명확히 인지되지 않은, 그러나 무언가 어긋난 것 같은 증상을 '명확하지 않으나 많이 들어본' 진단명의 박스에 넣어 분석가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또 중요한,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돌아보는 것은 Intake Form이 분석가에게 전해주는 감정이다. 얼핏 보면 비슷비슷하게 보인 각 차트들은 그들의 뭉툭한 언어로 미처 담아내지 못한 자신의 상태를 분석가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전달하곤 한다. 어떤 양식은 지나치게 꼼꼼하게 눌러 쓴 느낌으로 그 조심스러움과 긴장이 되려 분석가를 불안하게 하기도 한다. 유독 병원 차트 처럼 느껴지던 그 양식으로 처음 만난 내담자가 이후 ‘자신에게 얼마나 내, 외상적 고통이 있었는지’ 설명하는 방식이었단걸 돌아보기도 한다. 이런 강한 감정 반응엔 늘 차트를 보며 그저 ‘다른 것으로 부터 쌓였던 나만의 잔여 감정’이 아닌지 돌아본다. 그러나 어떤 잔여감정이 그 차트로 건드려졌었는지도 돌아보면 다 내담자와 의미있는 연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유아기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아이들이 부모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소통하는 것을 닮았다. 아이들의 엇비슷한 울음소리를 배고픔인지, 응가를 했는지 기가 막히게 구분하고 아이 얼굴을 향해 떨어질 것 같은 장난감을 순간이동 수준으로 받아내곤, 부모들은 이것을 ‘양육자의 촉’이라고 한다. 아이에 욕구에 기민하게 반응한 보호자도 추앙받아 마땅하지만, 사실 이 소통의 시작은 아이가 이룬 것이다. 낯선 세상이란 불안 속에서 보호자에게 자신을 전달해 내려는 아이의 생존의 몸부림은 경이롭다. 이처럼 반드시 소통을 해 내려는 이들은 어떠한 형태로도 상대에게 전달해 내고 만다. 자신의 감정과 잘 맞는 언어라는 그릇이 없을 땐 차트 속 그들의 울음으로, 손으로, 다양한 몸짓 발짓으로 분석가의 감정을 건드린다.
이러한,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소통방식은 간혹 정신분석을 비과학적으로 비추어지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자신들의 ‘과학적 방식’들이 상담공간에서 통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정신분석공간을 기웃거리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것이다. 지금의 과학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음이 실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정신분석이라는, 의식상태가 아닌 무의식으로의 항해를 시작했음을 잊지 말라. 당신의 의식의 모든 수단으로 닿을 수 있는 곳, 그 너머에 우리는 닿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포함한 앞선 두 개의 글은 [나의 정신분석 이야기]라는 앞으로 [내가 써갈 분석이야기]의 Intake From이고, 상영 전 예고편이다. 이 글은 당신에게 어떤 정보를 주요하게 전달하였는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였는가?
당신은 내가 작성해갈 분석공간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의 변과 주요 받는 오해사항을 1,2화에서 안내받았다. 여기에 더 나아가 다음에는 꼭 영화관에서 어김없이 방영되는 [상영 전 주의사항] 같은 이야기를 다음 글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그 안에 어떤 정보는 의식적으로, 어떤 건 무의식적으로 숨겨진 채 주요하게 전달되는 유의 정보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살펴봐주길 바란다.
누군가는 말한다. 영화 시작 후 10분이 이후 주요 이야기에 주요 미리 보기 같은 반영이라고.
지금까지 쓰고 있는 세 가지 이야기를 읽으며 ‘본격적 이야기 시작 전에 왜 이렇게 서론이 긴가?’라고 느낄 수 있겠으나, 차트를 본 순간부터 무의식의 소통이 시작되듯, Intake form에 미쳐 담을 수 없던 주요 정보가 분석가에게 감정으로 툭 튀어나오듯 이것은 서론을 가장한 본론이다. 스포일러를 가장한 부드러운 상영시작이다.
당신이 느꼈을지 모르지만, 무의식, 역전이 등 정신 분석을 말하려면 꼭 필요한 주요 개념들은 이 앞선 세 글곳곳에 버무려져 있다. 영화 관람 후 영화 포스터를 보며, 가끔 알고리즘에 뜨는 예고편을 보며, 그 영화를 추억하듯 내가 써 내려간 초반 몇 편의 글이 두고두고 돌아와 읽히는 그런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