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choanalytic nerd
“넌 마케팅회사, 광고회사 같은 데 갔으면 신나서 일했을 텐데!”
어쩌다 그 얘기가 나왔는지 맥락은 기억 안 나지만 (아마도 뭔가 내가 이런 아이디어는 어떠냐고 말했던 순간이었을 텐데) 최근 가까운 두 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돌아보면 그간 근무처에서도 새로운 뭔가를 만들거나, 지루한 일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일엔 공통적으로 나를 찾았던 것 같다. 가족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 젤 먼저 나서는 집안에서는 자타공인 이벤트 담당이다. 진짜 지금이라도 뭔가 해봐야 하나.
그런데 나는 잘하는지는 몰라도 정신분석과 떼어놓을 수 없는 Psychoanalysis nerd다. 정신분석과 관련된 이야기는 따로 모아 써야지 했는데, 내가 평소에 하는 생각들 중에 정신분석과 관련이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은 인상이나 기분도 부검학자처럼 날카로운 칼로 분해해 보고, 이전 조각과 같은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다른 이의 조각과 같은지 다른지, 혹은 다른 이라고 잘못 표기된 내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아, 이 어쩔 수 없는 너드의 삶이여!
“A bright delightful serious young woman”
작년에 나에 대한 글을 모아 한 책으로 묶어내는 프로젝트를 할 때, 조심스럽게 담당 교수님께 여쭤보니 툭 하고 꺼내신 나에 대한 한 문장은 위와 같았다. 이쁜 건 다 골라담은 듯 그 커다란 꽃다발 같은 한 문장을, 난 꼭 껴안고 와 또 누가 너드 아니랄까봐 한동안 곱씹어 보았었다.
나는 내가 쓰려고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정신분석의 이야기가 위 문장 형용사들 안에 다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이란 터널에 숨겨진 것들을 직시하듯 비추는 밝음.
그리고 자신과,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기쁨과 또 이 안에 혹여 그 기쁨을 깨트릴까 숨겨둔 방어기제.
자신을 분석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바라보는 삶에 대한 총체적 존중감.
그리고 어떠한 감정이든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확장될 수 있는 젊은 시각.
주변 몇몇 지인들의 말처럼 내가 마케팅 계가 놓친 인재라면, 나는 내가 살면서 만났던 어느 학문 중에서도 가장 나를 빠져들게 했던, 지나치게 매력적이라 나를 그 속으로 퐁당 들어가 살게 한 정신분석학을 널리 알리고 싶다. 이렇게 마치 글을 시작하는 긴 사유문 같은, 정신분석에 대한 연애편지의 겉 봉투 같은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