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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위 댄스

왈츠 말고 힙합이나 재즈댄스로

by Helen J

화요일 저녁.

요즘에 나에게 가장 기준시가 되는 시간이다.

한주를 잘 살았는지, 혹은 부족했는지 화요일 저녁이 다가오면 마치 작은 연말을 앞두고 한 해를 돌아보는 마음가짐으로 경건해진다. 바로 그 시간이 논문 지도 교수님을 만나 한주의 경과를 보고하고 같이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논문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는 이 일의 모든 성패가 나의 근면도에 달렸다고 생각했었다. 하루 24시간 중에 이 큰 부담되는 글쓰기의 시간을 늘린다면 그에 정비례해 종착점에 빨리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성실도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과정을 하면 할수록 전 과정이 지도교수님과 합을 맞춰 나아가는 게 꽤 중요함을 느낀다. 가끔은 교수님과 한 발 한 발 맞춰가는 이 과정이 글쓰기로 왈츠를 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발을 떼면 상대방이 그만큼 한 발짝 와주길 기다려야 하는. 내 마음과 글쓰기 속도가 앞선다 해도 교수님이 다른 지도 사례등으로 내 글을 차분히 읽고 수용할 공간이 없다면 나는 잠시 기다려야 한다. 또 어떨땐 교수님은 늘 나에게 “넌 네 안에 글이 다 있어. 그냥 쓰기만 하면 돼!”라고 하시며 느긋한 소 같은 나를 보고 답답해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쓰지 않으면, 교수님 역시 내가 발을 떼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찔려 고백하자면, 내가 먼저 발을 떼고 교수님을 기다린 적은 거의 없다. 이 과정이 왈츠라면, 교수님은 이미 음악도 준비하고 스트레칭도 끝내고 날 바라보는데, 나는 댄스화도 신지 않고 맨발로 와서 “헤-”하고 웃어버린 일이 한두 번도 아닐 거다. 이번 화요일처럼.)


그런데 이번 주는 교수님과 함께 흥겨운 춤사위를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도 왈츠보단 힙합이고 재즈댄스 같은 춤사위로.


요즘 여기저기 강의 다니느라 논문에 쓸 체력이 부족해서 화요일 미팅을 앞두고 셀프반성모드에 들어갔었다. 아 나는 왜 이럴까. 왜 일과 전후로 논문 쓰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지 못하는가. 보통 나에게 뭐라고 하시지 않는 교수님이지만 그래도 내가 대신해 나를 혼내고 있었다. 미팅이 시작하자마자 나의 불찰을 고백하고 다른 질문을 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물론이지! 답하는 교수님께 질문하나를 던지면서 우리는 새로운 장을 함께 열었다.


"What is Psychoanalytic Writing?" (정신분석학적 글쓰기란 뭘까요?)

라고 질문하니 교수님의 눈이 똥그래졌다. "“정신분석은 관계 내 역동을 기반으로 하는데, 일방적인 글쓰기에서는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정신분석학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요?" --라고 덧붙이자 교수님의 눈빛은 마치 놀이공원 입구에서 들뜬 아이처럼 반짝였다. "이런 거 아무도 질문을 안 해서 말할 기회가 없었어!" 하시면서.


교수님과 나는 흥분해서 이런저런 최근 글쓰기를 나누고, 글 쓰면서 고충이나 교수님의 최근 쓰신 글, 다른 저자의 글 중 crystal clear 한 글을 추천해 주시기도 했다. 내 글쓰기를 몇 개 말씀드리니 신나 하시며 영어로 번역해 보내 달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신나 금방이라도 번역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아쉽게 미팅시간이 금방 끝나버렸다. 춤을 멈추고 현실세계로 돌아온 교수님은 논문이 아닌 다른 글쓰기는 저항없이 술술인 내게 "논문에 대한 신박한 방어기제"라고 하시며 '그래, 이런건 괜찮아' 라며 웃어주셨다.


'담주는 꼭 논문 준비에 많은 성과를 가져와 왈츠도 재밌게 출게요 교수님.' 이라는 다짐으로,

그리고 혹여나 이 공간에 영어로 갑자기 게시물이 많이 올라오는 것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자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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