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첫 실시간 번역의 기억
오늘 오전엔 경기도에 위치한 한경국립대학교에 특강을 다녀왔다.
역시나 좀 멀리 갈 때는 네이버지도의 예약도착시간을 믿으면 안 된다!! 무려 1시간 일찍 도착해 넉넉히 강의 준비를 해야지 했지만 고속도로에 앞 버스가 추돌사고를 내서 예상도착시간보다 1시간을 늦게 도착해서, 강의 시작과 함께 강의실에 갔다. 와,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호명하는 단상에 서는 이 간담 서늘한 짜릿함! 지난번 발 동동 모드 이후로 매 강의 한 시간 일찍 가야지! 했는데, 아니다 이제 2시간씩 일찍 가야지, 다짐하며.
다름이 아니라, 내가 글로 기억해놔야 한다고 느낀 건 요즘 대학 내 강의 인프라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놀라서다. 외국인 학생들 대상 강의라 당연히 영어로 강의자료를 준비했고, 강의도 영어로 하려고 하는데, 헐레벌떡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담당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그냥 한국어로 하셔도 됩니다". 이게 뭔가 하고 봤더니 내가 실시간으로 하는 말 모두가 그 강의 장소에 있는 학생들 각 모국어인 몇가지 언어로 실시간으로 자막처리되어 화면에 나오는 거다! 사진을 찍어왔어야 하는데... 정신이 너무 없어 남기지 못한 게 안타깝다. (오늘 남긴 사진은 강의 후, 한가롭게 찍은, 이 게시물의 배경으로 선택한 벚꽃사진 샷이 전부다.)
이제 진정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은 교육 인프라가 실현되는구나! 이렇게 매 강의가 자국어로 자막 서비스되면 이들은 한국에서 학업 하면서도 언어장벽을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외국인 유학생들의 고충을 예상하고 이렇게 자국어로 번역해 주는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것이 교육공간에 그들을 더 이끌어들이는, 친절한 접근 방법일 것이다. 가끔 영어를 섞어 쓰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강의를 한국어로 진행했다. 번역된 자국어로 전달되는 자막이 꽤 정확도가 있는지 학생들도 실시간으로 끄덕이며 이해하는 분위기다.
내가 디자인을 전공하던, 소위 말해 라떼 시절에, 레드닷(Red Dot) 디자인 어워드에서 '자 모양의 번역기'가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일반 투명 자처럼 생긴 제품인데, 책에서 자신이 읽는 부분 아래에 대면 그 투명 자 위에 번역어가 표시되는 콘셉트의 제품 디자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런 기술력이 없던 시절이라, 재밌는 생각이다 싶으면서도, ‘아 이런, 현실 가능성 없는 디자인이 상 받을 거면 나도 알약으로 된 타임머신을 제안하지!’ 하고는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이후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 자 생각을 종종 했다.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진정 필요했던 디자인이구나! 또 가끔은 SF 영화에 나오는, 안경을 끼면 상대방의 언어가 안경 안에 자막처럼 모국어로 나오는 그런 슈퍼 안경을 너무나 바랐다. 타 과에서도 토론 수업이 많다고 하지만, 정신분석 학교인 우리 학교는 100% 토론 수업이다. 한 번 대화의 흐름을 놓치면 주요 내용을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다들 한 마디라도 더 하며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는 분위기 속에서, 내 발표 언어를 다듬다 보면 주제는 이미 다음으로 넘어가 있곤 했다.
언어의 장벽은 이 실시간 번역으로 모두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제 문화의 장벽은 이제 미미한 것이 될까.
오늘 강의를 진행하며 느낀 건, 물론 이 기술이 더 발전해야 할 지점이 있겠지만, 미묘하게 시차를 두고 전달되는 번역 자막처럼, 학생들과의 심리적 접점을 갖기엔 어딘가 거리감이 생긴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이해하는 몇몇 학생은 내가 질문해 주길 바라는 듯 바짝 허리를 펴고 경청했지만, 번역어가 필요한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가진 친구들은 아무래도 강의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내 질문에 자국어로는 대답할 수 있어도, 한국어로 바로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머뭇댔고, 그로 인해 수업 흐름도 다소 지연되었다. 지난달 타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 대상 교육을 영어로 진행했을 때는, 오히려 더 피드백이 빨랐다. 영어권 학생이 아닌 학생들이 주를 이뤘음에도, 결국 어떤 도구가 중간에 개입하지 않고 서로 눈을 바라보며 소통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더 정확하지 않나 싶다.
오늘, 요즘 국립대의 높은 교육 인프라 수준에 놀라면서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우리가 하는 소통의 몇 퍼센트가 진정으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걸까?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대화를 나누더라도, 서로의 눈빛, 표정, 어느 지점에서 고개를 끄덕이는지 등의 행동—이런 비언어가 온전히 전달될 때, 나는 학생들과 더 깊이 소통하고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비언어적 방법으로 소통된 것들은 무엇일까?
오늘 학생들은 화면에 보이는 자국어 자막을 따라가다가, 나와의 어떤 소통은 놓친 듯했다. 오늘 나와 학생들이 온전히 언어적으로 이해되면서도 놓친 그 내용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다소 딴나라 얘기같던 '실시간 번역 자 디자인'이 '실시간 강의 자막'으로 그럴듯한 현실의 그것이 된 것처럼,
비언어적 소통도 언젠가는, 온전히 번역되는 세상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