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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Feb 02. 2023

야옹이를 보내며..

몇 달 전 남편 일터 근처에 임신한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남편이 보내준 사진만 봤을 때 고양이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꽤 어려 보이는 고양이였다. 몸집이 작고 움직임이 우아했고 애교가 넘치는 치즈(노란 무늬)였다. 남편은 그 아이를 "야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야옹이는 타이어 더미 안에서 새끼를 낳았다. 아마도 그곳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엄마를 닮은 치즈 세 마리와 아빠를 닮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등어(갈색 무늬) 한 마리였다. 치즈 세 마리는 같은 치즈라도 외모가 약간씩 달랐다. 전형적으로 치즈스러운 아이는 그냥 "치즈"라고 불렀고 얼굴에 점이 있는 아이는 "점순이"라고 불렀다. 왠지 모르게 반항적으로 보이는 아이는 "하악이"라고 했는데  하악이는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고 늘 하악대는 아이였다. 고등어는 워낙 이쁘게 생겨서 "이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는 아이들의 소식을 주로 남편이 보내주는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접했다. 남편은 새끼 중 한 마리라도 집에 데려와 키우고 싶어 했지만 함께 사는 동물이 먼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키울 것이 아니니 너무 사람 손 타지 않게 최대한 야생에서 살도록 하되 배곯지 않게 사료와 물 정도만 챙겨 주자고 했다. 야옹이는 새끼들이 태어나고 무려 4개월이 지날 때까지도 젖을 물렸다고 하는데 모성애가 강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처음 새끼를 낳아서 뭘 잘 몰라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몇 달 동안 야옹이 가족은 남편 일터 근처에서 한가롭게 왔다 갔다 하며 지냈다.


한 2~3주 전쯤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야옹이네 가족이 동네 다른 고양이와 영역다툼을 하면서 다친 것 같다며 힘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난 후에도 계속 아이들이 비실댄다고 하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병원에 데려가 보라고 했지만 아마 바로 데려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결국 점순이가 죽었고 치즈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고양이는 몸이 아프면 사람 눈에 안띄는 곳에 숨어서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점순이도 눈에 띄지 않는 어딘가에서 죽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남편이 연락도 없이 새벽에 들어왔다. 계속 비실대는 야옹이와 살아남은 새끼 두 마리를 병원에 데려갔는데 병원에서는 어미인 야옹이가 그날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남편은 야옹이를 병원에서 퇴원시켜 데리고 나와 새벽까지 일터에서 함께 있다가 왔다고 했다. 아픈 야옹이를 두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야옹이는 결국 죽었다. "범백"이라는 병이 동네 고양이 사이에 퍼진 것이라고 했다. 치사율이 90% 정도 되는 병이라고 한다. 몸집은 가장 작았지만 야생성이 강했던 하악이는 스스로 병을 이겨낸 것 같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어서 여태 남편이 약을 먹이고 있다. 이쁜이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얼마 전 퇴원을 시켰는데 하악이와 함께 약을 먹이고 있다. 


며칠 전 전등사에 다녀왔다. 죽은 고양이들이 좋은 곳에 가 있게 해달라고 진심을 다해 빌었다. 우리 집안에는 기독교 신자가 대부분지만, 왠지 모르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는 신을 믿는 종교보다는 개미 한 마리 죽이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종교가 고양이의 명복을 빌기에는 더 적합할 것 같았다. 


정들까 무서워 일부러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 이름을 지어 불렀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모든 생명은 대충 지었든 정성스럽게 지었든 부르는 이름이 만들어진 순간 세상에 존재할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전달받은 영상에서 "야옹아"라고 불렀을 때 꼬리를 들고 남편에게로 뛰어왔던 야옹이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길을 걷다가도 자려고 누웠다가도 야옹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남편 일터에 갔을 때 두어 번 만난 게 다였지만 우아한 걸음걸이로 내 다리에 와서 자기 몸을 비벼댔던 그 아이의 죽음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며칠 전 퇴근한 남편과 집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반주로 청하 병을 비웠다. 집에 돌아와 우두커니 소파 앞에 앉아 있던 남편이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준다. 남편이 "야옹아~"라고 부르자 꼬리를 들고 남편에게 다가오는 야옹이 모습이었다. "오늘 약 먹이려고 하악이 묶어 놓아 놓았던 거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아...." 남편은 울음을 터뜨렸고 나도 함께 울었다.


남편과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되었지만 남편이 우는 것을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2019년에 써놓고 서랍 속에만 담아 두었던 글을 이제야 용기를 내어 발행한다. 하악이 이쁜이는 한동안 남편이 일터에서 돌보다가 2020년 2월 두 마리 모두 우리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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