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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늘 빠르고, 그만큼 불완전하다

by Helen

지하 주차장에서 실수로 하얀색 신형 벤츠 차량을 긁은 적이 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평소 자동차 튜닝 동호회 활동을 해오던 남편 덕분에 차주와 원만하게 협의가 되었고 다행히 큰 비용 없이 수리를 마칠 수 있었다.


수리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하자 차주는 집이 아닌 본인의 일터로 차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알려준 장소는 나에게도 익숙한 동네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 수리된 차를 세워두고 남편을 따라 매장 쪽으로 향했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가 자꾸 숙여졌다.


“여기네.” 남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은 회오리감자를 파는 작은 키오스크였다.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인사를 건네자 기름 묻은 앞치마를 두른 차주가 작업을 멈추고 허겁지겁 달려 나와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가슴 한쪽에서 낯선 감정이 스쳤다. 차만 보고, 직업만 보고, 겉모습만 보고 은연중에 ‘이런 사람일 거야’라고 단정 지었던 무의식 속의 내가 보였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일을 계기로 내 안에 조용한 변화가 일어났다. 마음속에 기준 몇 가지를 새기게 된 것이다. 보이는 정보로 서둘러 판단하지 말 것. 내 생각이 늘 옳다고 믿지 말 것. 가능하면 백지처럼,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볼 것. 하지만 누구든 사람을 만나면 순간적인 판단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판단을 억누르기보다 그 범위와 방향을 확장하는 쪽을 택했다.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선 겉모습 뒤에 숨겨진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혹시 이렇지 않을까’, ‘어쩌면 저렇지 않을까.’ 그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다 보면 하나의 시선에 갇히는 위험이 조금이나마 줄어든다.


나의 코칭은 아직 많이 서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이런 민망하고 부끄러운 순간들이 조금씩 내 안의 얼룩을 닦아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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