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지면서 한낮의 더위를 피해 산책 시간을 앞당겼다.
선크림을 듬뿍 짜서 얼굴 전체에 바르고 선캡에 선글라스, 양산까지 쓰고 나간다.
신용카드와 작은 손수건도 챙긴다.
멀리 보이는 횡단보도에 푸른 등이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절대 뛰지 않지만 운동 나가는 길이니까 기꺼이 뛰어준다.
횡단보도를 향해 돌진한다.
횡단보도 근처에 산책 나온 아가씨가 개와 함께 서있다.
내가 뛰어가는 걸 본 그 순간 얌전하던 개가 갑자기 펄쩍펄쩍 뛰며 짖기 시작한다.
놀란 나는 더 속도를 낸다.(줄행랑?)
뛰면서 뒤돌아 보니 개 주인도 덩달아 당황하며 펄쩍펄쩍 뛰고 있다.
재미있는 일상의 풍경이다.
잠깐 뛰었다고 이마에 땀이 맺힌다.
산책하는 동안 더울 때에는 코스에 따라 더위를 피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넝쿨식물 터널.
식물 그늘 속 시원함은 기본이고, 명화도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장미터널인데 넝쿨식물 터널처럼 그늘을 제공해 주지는 않는다.
대신 하루에 몇 번 터널에 둘러진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린다.
운이 좋아 물 뿌리는 시간에 터널 근처를 지나게 되면 일부러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깨끗한 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뜨거워진 얼굴에 대형 미스트를 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나쁘지 않다.
또 하나의 피서 아이템은 산책로 주변에 심어진 백묘국이다.
백묘국은 하얀 털로 덮여 있어서 마치 잎에 눈꽃이 핀 것 같다.
보고 있으면 겨울이 느껴진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마지막 피서 코스로 향한다.
집 근처 컴포즈 커피.
신용카드를 챙긴 이유가 바로 이 마지막 코스 때문이다.
키오스크에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가게 문에 붙여진 포스터 속 BTS 뷰의 얼굴을 보면서 땀을 닦다 보면
작은 창이 드르륵 열리면서 커피가 뿅 튀어나온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면
아직 오전 시간인데도 오늘 하루할 일을 다 끝낸 것 같은 개운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