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건 정말 싫지만 에어컨 바람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더워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꼭 밖에 나가 걷는다.
오늘 아침, 오전 10시 반인데도 이미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다. 땀을 흠뻑 흘릴 각오로 반바지에 티셔츠, 양산과 면 수건 하나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양산을 쓰고 걸어도 더운 건 어쩔 수 없다. 평소에는 포장된 길로 걷곤 하는데 포장된 길은 그늘이 없는 곳이 꽤 많다.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나무와 그늘이 많은 흙길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역시 흙길이 최고야.....' 하면서 흡족해하는 순간!
오른발이 작은 돌부리에 걸렸다. 갑자기 온몸이 춤추듯 휘청이더니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무릎이 땅에 닿자마자 바로 턱이 땅을 쳤다.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일어나 겨우 땅 위에 주저앉아 몸을 살폈는데 온몸에 흙이 묻어 있었고 양 무릎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땅을 짚었는지 왼손이 조금 부은 것 같았다.
이럴 때를 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산책용 크로스백 안에는 늘 작은 물티슈가 있다. (동네를 걷다 보면 가끔 교회에서 전도용으로 나눠 주심) 주저앉은 채 물티슈를 꺼내 흙이 묻은 곳을 닦고 잠시 숨을 돌렸다.
산책은 포기하고 약국에 가야 했다. 소독약도 사고, 통증이 느껴지는 손에 파스를 붙여야 할지 병원에 가야 할지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다시 양산을 펴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포장된 길을 걸으며 호수를 가로질려 약국을 향했다.
약국에 들어가면서 양산을 접으려는데 양산대가 휘어져 있다. 넘어지면서 양산도 타격을 입은 모양이다. 3단 접이식 양산이 접히지 않는다. 좋아하던 양산이지만 이제는 '헤어질 결심'을 한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보니 상처 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손바닥은 멍이 들었고 턱밑에도 상처가 났다. 소독하고 진통제를 먹은 다음 노트북을 열어 새 양산을 꼼꼼히 고른다. 빨리 배송되면 좋겠다.
더워도, 넘어져도 내일 또 걷는다. 왜냐하면, '길 위에서는 모든 일이 제자리를 찾아가니까.' (헤르만 헤세 '걷기예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