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엔 떠오르는 노래가 많지만
오늘은 유독 Uriah Heep의 ‘Rain’에 꽂혔다.
이 노래는 오래된 친구, 희수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희수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내리막길,
(대부분의 학교는 언덕 위에 있다)
우리는 종종 밤하늘을 향해
Peter, Paul & Mary의 ‘Lemon Tree’를 함께 불렀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이 박수를 쳐주었던 기억이 난다.
민방위 훈련이 있는 날이면
학교 복도에 줄 맞춰 쭈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Culture Club과 Wham의 노래를 부르며 킥킥거렸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영어 가사들인데
아직까지 모든 가사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희수는 종종 120분짜리 카세트테이프에
다양한 음악을 빼곡히 담아 내게 선물하곤 했다.
Uriah Heep의 ‘Rain’도 그렇게 처음 들었다.
희수가 좋아하는 노래라면
나도 그녀와 같은 마음이고 싶어서,
희수가 준 테이프를 듣고 또 듣고,
다시 듣고 또 들었다.
가사가 영어든 불어든 이탈리아어든
외우고 또 외우고,
다시 외우고 또 외웠던 그런 시절이었다.
희수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녀에게 끼친 영향보다
그녀가 내게 남긴 것이 훨씬 크다.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은데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 친구, 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