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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몬드초코볼

by Helen



요즘들어 남편이 퇴근길에 자주 사 오는 ‘아몬드초코볼’. 별말 없이 “오다 주웠다”는 듯 내 책상에 놓고 간다.


장보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먹거리를 사오는 걸 즐기지만, 하루 걸러 챙겨 오는 아몬드초코볼은 좀 수상하다.


의문을 갖던 중 문득 떠오른 일이 있었다. 지난 7월 중순, 아버지 기일이어서 온가족이 '시안'에 모였었다. 언니들이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것들을 준비해 왔는데, 그중에 아몬드초코볼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일본에 살던 시절, 아버지는 동경한국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다. 수업을 마치고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아몬드 초콜릿을 사서 한개씩 드시면서 집까지 걸어 오는 것이 아버지의 퇴근루틴이었다.


벌써 16주기라 모여도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아버지의 아몬드초콜릿 얘기는 몇 번을 반복해도 다들 처음 듣는 얘기처럼 공유한다. 아버지에 대한 몇 안 되는 좋은(?) 기억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번 기일에도 어김없이 아몬드초코볼 이야기가 오고갔고 막내라서 늘 조용히 찌부러져 있던 나는 오랜만에 한마디 보탰다.


“아버지가 사 오시던 건 저거랑 달랐어. 낱개로 하나씩 포장되어 있었잖아. 늘 몇 개 남겨서 나한테 주셨었어. 막내의 특권이었지 ㅋㅋㅋ”


어쩌면 남편은 그때 내 말을 기억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퇴근길에 아몬드초코볼을 사 오는 건 아닐까? 합리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심을 해 본다.


사실을 확인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굳이 남편에게 묻지 않으려 한다. 그저 내 추억과 감정에 공명해 주는 고마운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평화로운 가정생활 유지를 위한 나만의 부부생활 노하우라 우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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