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이 대전 출장을 다녀오는 길, 성심당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사진을 보내며 “뭘 사갈까?” 하고 물었다. 폭풍검색해 가면서 어떤 빵이 맛있는지 찾아본 다음 꼼꼼히 목록을 적어 남편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남편이 들고 온 성심당 봉투에는 내가 알려준 빵 말고도 온갖 빵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건 뭐야?” 하고 묻자, 남편은 그냥 웃는다.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리다 보면, 원래 계획보다 더 많이 사게 되는 이런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줄을 서고 기다린 뒤 예상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현상은 여러 심리학적 이론으로 설명된다.
희소성 효과 (Scarcity Effect)
긴 줄은 “이건 귀한 물건이다”라는 신호가 된다.
희소할수록 더 가치 있다고 느껴져, 계획에 없던 빵까지 손이 간다.
노력 정당화 (Effort Justification)
줄을 서며 쏟은 시간과 에너지를 보상하려는 마음이다.
“이렇게 기다렸는데, 딱 이것만 사긴 아쉽다”는 심리적 합리화가 작동한다.
자기 보상 심리 (Self-reward)
기다림이라는 작은 고생을 보상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선물을 한다.
결국, 빵을 더 많이 사는 건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이 된다.
반대로 나 같은 경우는 줄을 서더라도 처음 계획대로 실행하는 편이다. 줄이 아무리 길어도 “사기로 한 것만 산다”는 원칙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자기 통제력(Self-control) 혹은 목표 일관성(Goal Consistency)으로 설명할 수 있다.
줄서기의 압력보다는 사전에 세운 기준을 더 신뢰하는 성향.
사회적 분위기보다 내부 규칙을 따르는 경향.
기다림의 보상을 소비로 풀지 않고, “목표를 지켰다”는 성취감에서 얻는 경우다.
다만, 사실 나 같은 사람은 애초에 줄을 서지 않는 시간을 미리 찾아보고 가거나, 그래도 줄이 길면 그냥 발길을 돌린다.
줄의 마법에 흔들리지 않는 나와, 줄의 마법에 홀라당 넘어가는 남편. 남편과 나는 모든 면에서 반대다. 하지만 나는 심리학 이론에 착착 들어맞는 남편의 행동이 싫지 않다. 냉동실이 빵으로 가득 차는 건 조금 답답하지만, 결국 그 덕분에 한동안 맛있는 빵을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가벼운 점심 뒤에 헤비한 디저트를 즐긴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칼로리 핑계 대며 절대 먹지 않았을 빵인데, 결국 이렇게 또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