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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Jul 04. 2023

미용실 다녀온 게 언제더라?


"미용실 다녀온 게 언제더라?".................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계부 앱의 지출 내역 상으로는 작년 5월이 마지막 미용실 지출이다. 머리를 한 지 1년이 넘은 것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남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1년에 3~6번 정도 미용실에 가서 파마나 커트를 했다. 퇴직 후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지금은 1년에 2~3번 정도 미용실을 이용한다. 그러니 1년이 지났다고 하는 것은 머리를 할 때가 6개월도 더 지났다는 뜻이다.


보통 욕실에서 양치를 하면서 미용실에 갈 결심을 한다. 이를 닦으며 물끄러미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모근 쪽에서 올라오고 있는 곱슬기 있는 머리카락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할 때가 있다. 머리를 빗어 넘겨 고무줄로 묶으면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잔머리들이 자기주장 강하게 삐져나오면서 망나니 스타일이 되기도 한다. 바로 그럴 때 미용실에 갈 결심을 한다. 남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만이 느끼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무려 6개월이 지나도록 부스스한 머리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솔직히 타이밍을 6개월 넘긴 지금도 딱히 머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고 있다. 곱슬기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잔머리가 얌전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한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이거나 민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용실 가는 것을 잊어버린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년 동안 낯선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가끔 강의를 하러 가면 낯선 사람을 10~30명 정도씩 만나기는 하지만 대부분 한번 만나고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처음 강의를 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복장과 머리에 나름 신경을 썼었지만 요즘은 그냥 편한 차림새로 강의를 한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캐주얼한 복장으로 교육장에 오는데 강사 혼자 멋지게 차려입고 가는 것도 어색하고 무엇보다도 정장을 입고 강의를 하면 몹시 불편하다. 특히 옷에 어울리게 맞추느라 구두를 신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발가락을 옥죄인다. 아무리 굽이 낮은 구두라 하더라도 그 통증에서 해방되기는 어렵다. 강사의 Apperarance가 첫인상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편함 때문에 강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편한 복장으로 최대한 내 역량을 펼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저 강사 복장이 왜 저래?' 하고 생각하는 수강생이 있다면 내 전문성으로 그 생각을 잊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작년 말쯤 모 기업의 요청으로 단기간 컨설팅을 한 적이 있었고 그때 처음 호흡을 맞추는 고객사 담당자와 회의를 할 일이 많았다. 그때도 나는 머리를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새치가 많은 후배 프리랜서 A의 경우 평소에는 머리에 신경을 안 쓰다가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에는 미용실에 가서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한다는데, 나는 고무줄로 질끈 동여맨 시골 농부 같은 머리로 고객사에 미팅하러 가곤 했었다. 추레한 첫인상 따위 신경 안 써도 될 정도로 나에게 전문성과 자신감이 충만해진 것일까? 아니면 그저 게을러지고 있는 것일까?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한두 달 전쯤 코칭실습시간을 채우기 위한 버디코칭을 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의 코칭 주제는 "일 때문에 중단했던 산책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였다. 20분 정도 진행된 코칭 중 코치 역할을 했던 버디가 나에게 "산책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봤고 나는 "화장"이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산책을 가려면 화장을 해야 하는데 화장하기가 귀찮다, 이전에 산책을 매일 했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부터 했고 화장한 게 아까워서라도 산책을 나갔다.. 등등의 말을 했는데 그때 나의 버디가 "저는 그냥 모자만 눌러쓰고 나가는데요~"라고 무심하게 한마디 던졌었다. "코치님이 젊어서 그래요~ 저는 맨얼굴로 나가기가...." 궁색한 변명을 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계속 버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왜 우연히 누군가를 마주칠 일도 없는데 굳이 화장을 하고 산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누군가를 마주친다 한들 맨얼굴이면 또 어떤가? 화장은 핑계였다. 바로 모자 쓰고 운동화 신고 문밖으로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작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 동네 한 바퀴 산책을 갈 때나 마트에 장 보러 갈 때, 우체국에 우편물 부치러 갈 때, 단골 베이커리에 빵 사러 갈 때, 동네 알라딘 서점에 책 구경하러 갈 때.... 선크림만 바르고 당당히 맨얼굴로 외출을 한다. 1년째 파마를 안 한 머리는 늘 그랬듯 고무줄로 동여맨다. 이렇게 편한데 예전에는 왜 외출할 때는 화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머리와 옷에 돈과 시간을 써왔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온 것이 맞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예의를 지켜야 하는 상황도 있겠지만 깔끔함과 단정함이면 기본적인 예의는 갖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깔끔함과 단정함에 품위와 세련됨이 얹혀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이 변한다고 하는 것은 유연성이 아직 살아있다는 좋은 징조다. 그 변화의 방향이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의 충만함이면 좋겠다. 눈빛 형형하고 언행에서 좋은 향기가 느껴진다면 파마하지 않은 머리와 화장기 없는 얼굴이라 해도 당당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사진 출처 : 넷플릭스 영화 "그녀가 말했다(She said)"의 한 장면. 최고의 프로페셔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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