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에서 메일이 왔다. 소멸되는 마일리지가 있으니 올해 안에 사용하라고 한다. 몇 년 전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또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여행이나 마일리지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흐려지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횡재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연말까지는 두 달이 채 안 남았고 시간 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갈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여행이 안되니 마일리지를 소진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횡재한 기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일리지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마일리지몰에 들락 거리면서 "추가비용 없이, 최소한의 클릭으로, 최고의 효용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처음에는 테스트 삼아 교보문고 바우처로 책을 사보았는데 그 방법으로 마일리지를 소진하려면 집 안에 책장을 새로 사서 들여놔야 할 수도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10,000원짜리 바우처는 한 번의 쇼핑에서 한 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5,000원짜리 책을 사면 바우처로 10,000원을 쓸 수 있기 때문에 5,000원만 추가로 부담하면 되지만, 10만 원어치 책을 사도 바우처는 10,000원짜리 하나만 쓸 수 있기 때문에 9만 원의 추가비용을 내야 하는 것이다. 추가비용이 많이 들고, 클릭도 여러 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효용도 떨어진다. 교보문고 외에 이마트와도 제휴가 되어 있었지만 비슷한 방식이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 결국 이마트와 교보문고는 머릿속에서 삭제했다.
고기(제동한우)를 사면 마일리지가 꽤 많이 소진되는 것 같았다. 그만큼 비싼 고기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인데 품질이 좋은지 어떤지는 따질 상황이 아니고 마일리지 소진이 급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인기품목이라 그런 것인지 고기는 계속 품절 상태였다. 매주 월요일 10시에 재입고된다고 해서 시간 맞춰 들어가 봤는데 아이돌 콘서트 피켓팅 수준이다. 그동안 갈고닦은 덕질 스킬을 마일리지몰에서 발휘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다. 겨우 친정과 시댁에 한 세트씩 고기 선물을 보내긴 했지만 마일리지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뭔가 더 필요하다. 슬슬 마일리지는 애물단지가 되어 간다.
마지막으로 찾은 방법은 호텔 뷔페 이용. 때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휴호텔이 있었고 금액도 적당했다. 고기 귀신이지만 싸고 양 많은 고깃집만 찾는 짠돌이 남편을 데리고 가면 제법 생색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포기하고 사는 나에게도 고급진 호텔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매력적인 힐링이다. 우선 이용해 보고 만족스러우면 두세 번 더 이용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추가비용 없이 몇 번의 클릭으로 해결 가능하고 효용도 좋은 것 같아서 한시름 놓았다.
마일리지 몰에서 바우처를 구매한 후 예약을 위해 호텔로 전화를 했다. 예약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마지막으로 혹시 마일리지 바우처로 결제하실 거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담당직원이 이런 말을 덧붙인다. "저희가 지금 한우 프로모션 기간이라서요 결제하실 때 추가로 인당 11,000원씩 추가결제 해주셔야 합니다"
또 추가비용???!!!! 당황스러움을 겨우 가라앉히고 담담한 말투로 불편감을 표시했더니 전화기 너머 담당직원은 연신 죄송하다고 한다. "담당자분이 죄송할 일은 아닌 것 같고요, 일단 알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한항공 고객센터를 통해 해결하리라 결심하면서.
요즘 MZ들은 전화 통화보다는 문자 소통을 더 좋아한다는데 나 또한 그렇다. 다만 클레임을 할 경우에는 보다 정확한 상황 전달을 위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전화통화가 낫다. 고객의 소리 같은 곳에 글을 올린 경우 만족스러운 답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동문서답이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대한항공 고객센터로 전화를 한 결과는 어땠을까? 여기에서는 해결 불가능하니 홈페이지에 가서 글을 올리라고 안내한다.(헐~) 그때 전화를 받았던 직원도 호텔 직원처럼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나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담당자분 잘못은 아니고요~"라고.
결국 고객 센터에 글을 써서 보냈다. 엉뚱한 답을 받지 않기 위해 브런치에 올리는 글보다 더 정성을 기울였다. 마일리지몰에 인상된 호텔뷔페 가격을 반영해 달라.(IT회사에 다녀본 경험으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호텔 뷔페 예약한 날짜 전에 작업을 완료해 주면 좋겠다. 그렇게 해준다면 기존 바우처 구매한 것을 취소하고 새로 결제하겠다. 그래야 동행인에게 제대로 생색낼 수 있을 것 아니냐!! 어쩌면 2인 기준 22,000원의 추가비용이 큰돈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공짜로 먹는 줄 알고 따라왔다가 추가결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시는 오지 말자고 할 수도 있는 짠돌이가 바로 내 남편이다.
메일로 답이 올 것 같아서 메일함을 열심히 체크하고 있었는데 며칠 후 뜻밖에도 대한항공이 아닌 호텔에서 메일이 아닌 전화로 회신이 왔다.
"고객님~ 그냥 추가비용 없이 이용하시면 됩니다"
"네? 아.. 혹시 대한항공에 제가 올린 글이 피드백된 건가요?"
"네, 맞습니다. 저희가 두 달 동안만 프로모션 하는 거라서요... 그냥 추가비용 없이 이용하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하긴 한데요.... 그런데 제가 앞으로도 몇 번 더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매번 그렇다는 건가요?"
"네, 오실 때마다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성탄절 등 극성수기를 피해서 예약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그 정도 상식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진심이었지만 묘한 불쾌감도 따라왔다. 고객센터에 불만을 올리지 않은 다른 고객은 추가비용을 내는데 고객센터에 불만 글을 올린 나만 예외처리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마치 진상고객이 된 느낌이랄까. 고객센터에 글을 올린 것은 개인적인 이슈가 출발점이었지만 내가 원한 것은 시스템의 개선이지 가격을 깎아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예약된 날짜에 호텔에 방문해서 좋은 분위기에서 한우 프로모션 중인 점심 뷔페를 즐겼다. 짠돌이 남편은 이때다 싶었는지 한우 소금구이를 배가 불룩해지도록 먹었다. 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눈치를 보느라 남편만큼 마음 편히 즐기지 못했다. 추가결제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지만 내부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생겨서 결제할 때 추가결제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혹시 예약자 이름보고 직원들들끼리 "진상 왔다, 진상" 이러고 쑤군대는 건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걱정들 말이다. 식사 후 정산을 할 때 직원이 작은 종이를 주면서 서명을 하라고 했는데 나만 예외적으로 처리하느라 이런 서류가 필요한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 모든 걱정과 의심은 고객의 문제를 예외처리 방식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프로모션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가격 변동이 있다면 제휴 호텔과 대한항공 측이 긴밀히 연락해서 바로바로 시스템에 반영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시스템을 손보지 않고 사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일까? 아직도 고객 서비스를 "시스템의 개선"이 아니라 "사람의 미소, 친절"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친절한 사과"가 아니라 "정확한 문제해결"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른 고객들에 대한 재발방지"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는 않다는 것도 잘 안다.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어떤 사람은 특별대접받았다고 좋아할 수도 있다. 역시 우는 아이 젖 주는 것이구나 하면서 기뻐할 수도 있다. 앞으로도 불만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클레임을 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서비스 제공 업체의 잘못된 일처리 방식이 새로운 진상고객을 만들어 내는데 한몫 거들고 있는 꼴이다. 시스템적인 문제해결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로, 대한항공에서는 아직 내 고객의 소리에 대한 회신이 오지 않았다.
※ 며칠전 마일리지몰에 들어가서 보니 추가금액 없이 뷔페 프로모션을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가 되어있었다. 개선이 된 것 같아서 내심 뿌듯! 나는 이제 더이상 진상고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