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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Dec 15. 2023

그 많던 옷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소비와 버림에 대한 죄책감

얼마 전 당근마켓에 빨간색 캐시미어 스웨터와 체크 셔츠를 만원에 내놓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옷이라 그런지 바로 구매자가 나타났고 비대면 거래 약속을 잡았다. 약속한 날이 되어 스웨터를 포장하다가 겨드랑이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얼마 입지도 않은 옷인데 구멍이라니, 이거 진짜 캐시미어구나! 잠시 뿌듯해하다가 아차 싶어서 황급히 구매자에게 연락해서 구멍이 나 있어도 괜찮다면 반값으로 드리겠다고 했다. 거래가 취소될 경우 옷을 버려야 할 생각에 찜찜는데 다행스럽게도 구매하겠다는 답이 왔다. 참 고마 구매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옷을 분류하곤 한다. 변색이나 이염이 있는 옷, 보풀이 있는 옷은 아파트 내 의류수거함에 넣는다. 상태는 괜찮으나 메이커가 없는 옷은 기부용 상자에 모아 둔다. 중고로 판매할 옷은 그럴싸하게 사진도 찍어야 하고 설명글도 성의 있게 써야 하니 꼼꼼하게 신경 써서 골라내는데 거의 입지 않았거나 브랜드가 있는 옷이 그런 옷들이다.


한 번씩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면 내가 가진 옷의 도 줄어들지만 무엇보다도 옷을 꺼낼 때마다 엉켜버리는 옷걸이에 대한 짜증도 함께 줄어든다. 가진 옷의 총량을 차근차근 줄이는 중이라서 새 옷은 잘 사지 않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금씩 옷장이 헐렁해지고 있다. 게다가 나는 옷을 아주아주 오래 입는 사람이다. 오래된(물려받은) 세무 재킷을 입고 외출했다가 왼쪽 소매가 떨어져 나갈 뻔한 적도 있다. 현장을 목격한 직장 동료들은 당황스러워했지만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와 실밥 터진 부분을 바느질했고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그 재킷을 입고 다녔다.


사진=언스플래쉬

지난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무신사"에서만 1,500억 원어치의 옷이 팔렸다고 한다. 숫자만 들었는데도 옷더미에 깔려있는 느낌이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것을 배웠는데 "내가 입는 옷의 80%는 내가 가진 옷의 20%밖에 안된다"는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같은 청개구리야 말로 그 법칙의 예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이상한 도전을 시작한 것이 그즈음부터였나 보다. 손이 안가는  옷을 수시로 처리하면 5:8 정도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열심히 옷을 분류하고 처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총량을 줄이면서 가진 옷을 골고루 입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 결과는? 인정하기 싫지만 아직까지는 2:8 주변에서 빙빙 돌고 있다. 옷의 수량은 줄었지만 손이 가는 옷은 계속 손이 가고 안입는 옷은 계속 안입게 된다. 파레토의 법칙 인정!


그나저나 사람들은 그 많은 옷을 사서 언제 다 입는 것일까? 돈이 많고 식탐이 많아도 하루에 수십 끼를 먹지는 못하는 것처럼 한 시간 단위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면 왜 그렇게 많은 옷이 필요할까? 유행이 지났거나 싫증 났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옷이 너무 아깝다. 버리지 않고 반품을 한다고 해도 구매하고 반품하는 과정 속에서 소모되는 에너지와 비용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단기적 욕구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적 사회적 비용을 비교해 보면서 올바른 소비를 하라고 하면 나는 꼰대가 되는 것일까?


독일의 학교 교육에서는 생태교육을 중요시 여기는데 그런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독일 젊은이들은 소비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동을 할 때에도 탄소배출이 많은 비행기보다는 기차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국내 기준 기차의 탄소배출량은 41g, 비행기는 255g /  https://rageyun.tistory.com/63) 당장 눈앞의 필요만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소비한 결과가 사회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생각하면서 소비를 하는 것이다. 멋지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는 나조차도 기차와 배를 타고 제주도 와서 강의해 달라고 하면 1초도 고민 안 하고 거절할 것 같기는 하다.


비행기 대신 기차를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나에게도 소비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그것은 온전히 버림에 대한 죄책감 기인한다. 물건을 살 때부터 잘 버릴 수 있는 물건인지를 생각하곤 하는데 버릴 것을 생각하면 소비가 미안해지고 어려워진다. 그 덕분에 옷장의 옷과 내가 가진 물건들이 조금씩 줄어든다. 그 자리에 삶의 여백이 가득 차고 그 여백 사이로 숨이 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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