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콘텐츠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되었군요. 교육을 수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 교육인지,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필요로 하는 내용인지"가 교육과정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콘텐츠는 교육과정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교육담당자의 전문성은 콘텐츠가 아니라 프로세스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육과정 개발 방법론에서는 콘텐츠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아요. 그 부분은 SME(Subject Matters Expert, 내용전문가)의 전문영역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교육담당자가 콘텐츠에 대해서 전혀 몰라도 되는 것은 아닌데요 그 이유부터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1. 교육담당자도 콘텐츠 공부가 필요하다
교육담당자에게는 프로세스 전문성이 필요하고 콘텐츠는 SME로부터 제공받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세스와 콘텐츠를 딱 선을 그어 구분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우선 앞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교육목표 안에는 콘텐츠가 포함됩니다. 즉,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목표를 기술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단순하고 손쉬운 Design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시간표" 그리기를 하더라도 콘텐츠를 모르면 막막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과정은 개발해야 하겠는데 콘텐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Analysis, 즉 분석 단계에 있습니다. 문헌분석, 벤치마킹, 서베이, 인터뷰 등 Analysis에서 수행하는 일들을 꼼꼼히 수행하면 교육과정 개발에서 다루는 주제와 콘텐츠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되거든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Analysis를 생략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문헌분석은 직접적으로 공부를 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개발하고자 하는 교육과정의 주제나 키워드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관련 도서를 찾아서 읽는 것이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에요. 저의 경우 문헌분석은 개발할 교육과정의 주제에 내 몸과 머리를 적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용어를 알게 되고 낯선 분야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시간표를 그리기 위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이 쌓이게 되고요, 나아가 어느 순간 SME와 말이 통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2. 학습콘텐츠의 선정, 순서 결정
시간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Design의 원시적(?) 접근인 시간표 작성을 예시 삼아 콘텐츠의 선정과 순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시간표를 작성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먼저 Module(과목)이 결정되어야 하고, Module의 나열 순서도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Module에 시간을 얼마나 배정할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우선 Module 선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교육은 비싼 쇼핑"이라는 말 기억하시는지요? Module 선정의 출발은 Analysis에서 실시한 문헌분석, 인터뷰, 서베이 등의 결과 시급하고도 중요하게 학습되어야 할 우선순위가 높은 콘텐츠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됩니다.(자세한 내용은 https://brunch.co.kr/@helenlm4t/47를 참고 바랍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에 비유해 본다면 "구슬"을 찾아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베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도출된 콘텐츠들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콘텐츠 후보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직 꿰어지지 않은 구슬이거든요. 유사한 맥락에 있는 콘텐츠 후보들을 그룹핑하고 이에 이름을 붙이면 Module(과목)이 됩니다. 구슬들이 꿰어지는 단계입니다. Module이 선정되면 해당 콘텐츠가 "교육"이라는 Intervention을 통해 학습되는 것이 효과적인지 아닌지를 잠깐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어떤 Module은 혼자 책 보고 공부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때로는 OJT(On the Job Training)로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교육!"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콘텐츠 후보들을 적당히 묶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하면서 Module이 선정됩니다.
<Analysis 결과 도출된 콘텐츠 후보를 그룹핑해서 Module로 변신시키기>
이제 Module 나열 순서를 결정할 순서입니다. 교육과정의 전체 흐름 속에서 각각의 Module이 어느 시점에 배치되는 것이 최적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지요. 교육과정에 따라서는 Module의 배치 순서가 크게 문제가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순서를 고려해야 할 경우에는 일반적으로는 쉬운 것부터 학습하도록 한 후 어려운 것을 학습하도록 배치합니다. 지식과 기술의 선후 관계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같은 콘텐츠라도 학습의 여정 중어느 시점에서학습하느냐에 따라 수강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수강생의 학습 관심도, 동기, 심리 상태, 피로도 등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필수교육 등 수강생들의 학습동기가 낮은 경우에는 교육 초반에 흥미를 끌만한 콘텐츠를 "짜잔~"하고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 교육 들을만하겠네.."라고 생각하며 무관심 상태가 관심 상태로 바뀌기도 하거든요. 교육기간이 2일 이상인 경우에는 전체적인 학습의 다이내믹에서 기승전결이 느껴지도록 Module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도 기승전결이 있는 소설이 더 재미있듯이 교육도 기승전결이 있으면 수강생 입장에서 훨씬 학습하기 편안하고 학습효과도 좋거든요.
3. Module별 시간 배정
Module의 시간 배정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개입됩니다. Analysis 결과 중요도가 높거나, 난이도가 높거나, 현 수준과 목표 수준의 GAP이 큰 Module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콘텐츠 자체의 특성 외에도 어떤 교육방법을 쓰느냐도 시간배정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교수전략과 교육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다룰 텐데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우선 가장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콘텐츠를 다룰 수 있는 교육방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강의"입니다. 교육목표가 단순히 지식의 전달에 있다면 "강의"만큼 효율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육목표가 지식의 이해를 넘어서서 기술을 습득하거나 행동의 변화에 있다면 어떨까요? "강의"만으로는 목표달성이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실습", "팀토론", "사례연구" 등의 참여식 교육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지요. 그런데 참여식 교육방법은 "강의"에 비해 시간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실습을 한다고 하면 실습방법에 대해 안내도 해야 하고 실제 실습도 해야 하고 결과에 대해 피드백도 주고받아야 합니다. 토론을 할 경우에도 토론시간 외에 발표시간까지 고려해야 하니 이 또한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결국 교육목표에서 어느 수준까지의 변화를 기대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에 따라 교육방법이 달라지고 교육방법이 달라지면 시간배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경험이 많은 교육담당자는 교육목표와 콘텐츠, 학습순서, 시간배정 등의 작업을 직관적으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ADDIE Model처럼 선형적이고 순차적으로 교육과정 개발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Rapid Prototyping이나 SAM과 같은 Agile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교육담당자가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하다 보면 그야말로 "선 무당"이 되기 쉬워요. 그러니 다소 번거롭더라도 꼼꼼하고 차분하게 단계를 밟아 가며 교육과정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