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en Oct 14. 2016

잘 알고 있다는 환상

적어도 한 번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홍콩이라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빽빽한 고층 건물들과 밀도 높은 인파, 란콰이풍의 밤문화 그리고 쇼핑몰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홍콩은 여행 리스트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이미 난 그런 곳에 살고 있으니.


친구가 살지 않았다면 과연 갔었을까? 여하튼 친구와 함께 그 친구의 집을 가기 위해 홍콩 여행이 시작됐다. (셋은 10년 지기 동네 친구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살던 여행도 다시 시작되었다.


적어도 한 번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설사, 뻔해 보여도 아닌 것 같아도 한 번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내가 예상한 것들이, 알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를 수 있다.


홍콩은 이럴 거다라는 성급했던 내 판단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물론 빽빽한 건물들 북적이는 사람들과 쇼핑몰들처럼 예상과 같은 것들도 있었지만 예상도 못한 것들로 난 적잖이 당황했다.


도심에서 벗어나 산길로 굽이돌아 남쪽으로 가면 stanley라는 곳이 있다. 도심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비로소 난 숨이 좀 트였다. 

홍콩이 빽빽한 도심만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아니라고 뒤통수 제대로 쳐 준 곳이기도 했다

홍콩 자체도 섬이지만 근처에 꽤 많은 섬들이 있다. 물론 전에 몰랐다. 도심에서 배 타고 20-30분 거리에 있는 lamma섬도 그중 하나이다.

한두 시간 정도의 트래킹 코스와 수영 가능한 해변, 수산물 시장과 식당 및 카페, 작은 소품샵이 포구 근처에 있다. 순간, 미친 주거비만 아니면 홍콩도 살만하겠다 싶었다. 도심에서 부담 없이 이런 곳에 와서 바람을 쐴 수 있다면 저 빽빽한 도심에 사는 것이 모두 상쇄되리라.

그리고 독특한 홍콩만의 분위기가 있다. 한편으로는 이방인으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표현하면 곁을 내주지 않고 서로 이방인으로 사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


모두가 이방인인 것 같은 이곳에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또 하나가 여지없이 깨진다.

바로 10년 지기 내 친구. 역시 여행은 익숙한 것에 대한 깨짐의 연속이다.


여행 동반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동반자들의 성격과 취향의 유사성은 사실 그렇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동반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주 소통하고, 서로의 욕구와 취향과 가치를 절충하거나 공유함으로써 좋은 여행을 만들어나가려는 의지가 있느냐이다.

- 여행의 심리학 | 김명철 -


지인 중 여행 친구로 갔다가 철천지 원수로 돌아온 사람들을 한 두 명쯤은 알고 있지 않나? 나도 있었다. 그래서 여행은 성향도 비슷하고 잘 아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일부러 망칠 필요까진 없으니까.

그런데 보낸 시간의 길이, 속마음 털어놓는 사이, 비슷한 성향 따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내 확신이 산산조각 났다. 출국부터 뭔가 심기가 뒤틀린 친구는 결국 여행 내내 단 둘이서 있을 때면 격양된 감정과 막말을 쏟아냈다. 나에게 이런 막말을 쏟아내는 이 사람은 내가 알던 그 사람인가? 


누군가를 잘 알고 싶을 때 보통 권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돈내기 게임을 해본다던지 작은 것이라도 권력 비슷한 것을 줘본다던지. 또 하나의 방법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보는 것이다.

어색하고 불편한 환경들이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드러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뭐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지 않나?


여행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한두 가지는 깨지게 하는 마법이 있다. 그것이 장소에 대한 선입견이던 지인이던 나 자신이던. 

 

매거진의 이전글 관광객과 여행객의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