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도시 - 피렌체
로마에서 피렌체로 간다. 기차로 2시간 반이다. 메디치 가문의 안방, 그 후원으로 모여든 천재들이 꽃피운 르네상스의 발상지, 소설 속 연인의 장소인 두오모(대성당). 피렌체로 떠오른 것이다.
아르노 강을 낀 작은 마을이다.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두오모다. 일명 꽃의 성모 성당. 상단 쿠폴라에 눈길이 닿기 전 건물 벽면에 압도된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린 줄 알았다. 색색의 대리석을 짜 맞추어 넣은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세례당 안의 장식도 외관 못지않게 화려하다. 아시아에 있을 법한 황금 사원을 보는 듯하다. 옆에 높은 탑은 조토의 종탑이다. 종탑은 종 치는 사람이 오르라고 만든 거다. 당연히 열악하다. 좁고 어두우며 가파른 통로에서 아이가 운다. 오르는 나도 울고 싶다. 하지만 오르고 나면 피렌체 시내와 함께 붉은 쿠폴라를 볼 수 있다.
성당 상단인 쿠폴라는 붉은 돔이다. 예술과 건축에서는 돔형의 구조와 기술이 중요할 거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연인의 약속 장소이다. 피렌체의 두오모, 일본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에 등장한다. 덕분에 피렌체 곳곳에 드레스를 입고 화보를 찍는 동양 커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열정이 시작되는 거다. 뜨거운 열정의 대표주자가 젊은 시절 사랑일 거다. 설레고 그리우며 아파하고 후회하며 아련하고.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시간이 냉정으로 밀어 넣을 때도 담담하길 바란다. 더 흐른 시간이 평온하게 재구성해줄 거다. 그렇게 모든 관계는 냉정과 열정사이를 오간다.
많은 커플이 여행겸 화보를 찍고 명품 쇼핑백을 한 아름 들고 다닌다. 신혼여행인 거다. 미리 알았다면 왔을까? 왔을 거다. 르네상스를 시작한 이 곳이 궁금했을 거다. 도시를 걷고 우피치에 갈 거다.
우피치는 영어로 오피스다. 메디치가의 집이자 피렌체 정치 관저이다. 지금은 이 가문에서 증여한 작품들이 모여있는 미술관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연도별 작가별 늘어놓은 작품들은 재미없다. 서로 어깨동무하듯 모여 있는 그들은 빛바래 보인다.
그들의 자리는 그곳이 아니다. 제작이나 의뢰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은 하나의 무덤에 모여있다. 좋은 예가 다비드상이다. 이 조각상은 자타공인 천재인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그런 그가 가분수 조각상? 그럴 리 없다. 높은 곳에 설치될 것을 계산했는데 자리를 잘못 잡은 거다. 무엇이든 자기 자리에 있을 때 빛나고 아름다운 거다. 작품도 사람도.
약장사로 시작해 금융으로 부를 추적한 메디치가는 그것을 학문과 예술에 썼다. 역사상 드문 다수의 천재들이 우연히 이탈리아 피렌체에 모였을까? 아닐 거다. 사람은 대우받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아무리 천재라도 배우고 키워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돈과 권력도 이렇게 쓰면 존경스럽다. 있다고 다 이렇게 쓰지 않는다. 강남에 건물부터 사는 사람이 메디치가의 부가 주어질 때 같을까?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가 그 사람의 수준이다. 더구나 현대는 소비의 시대 아닌가. 당신의 소비가 당신을 보여준다.
미술관을 반쯤 지나고 휴식시간이다. 신선한 공기와 담배 한대가 절실했다. 그 짧은 시간,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어디서 왔니? 우피치 어떻든? 캐나다에서 온 이 분은 아시아가 너무 좋아 많이 다녔단다. 헤어지기 아쉽게 짧은 시간이다.
서로 좋은 여행 하라고 인사하면서 저렇게 나이 들어가야겠다 싶다. 낯선 이에게 말 걸고 웃는, 아쉬워 그 사람이 더 궁금해지는, 함께 얘기하는 시간이 즐거운 사람.
좋은 사람을 만나면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날 때, 얼굴에 드러나는 증거로 내 삶을 자랑하고 싶다. 배려하고, 보듬어 주는 마음이 주름에 촘촘히 박혀 성형수술로 가질 수 없는 착한 얼굴로 먼 훗날 재회하고 싶다.
-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3 | 박민우 -
여행은 속내를 털 기회를 준다. 동행자가 아니더라도 낯선 이에게 평소에 하지 않던 말들을 털어놓는다. 묘하다. 그리 털고 그 사람을 듣고 나면 기대한 작품 본 것 못지않은 기분 좋은 따뜻함이 생긴다.
단, 사람을 봐가면서 하시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숙소에서 40을 넘기며 사춘기가 온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30을 시작하며 덤덤했던 것과 다르다. 생각이 많아졌다. 절반을 살았다. 이렇게 사는 거 맞나부터 나이 든 이들의 민폐에 적당히 살아야겠다까지. 듣던 상대가 불쑥 '동네 아줌마들도 비슷하더라. 애들 다 키우고 울적하데'란다. 미혼에 아이도 없지만 내 진단명이 나왔다. '아줌마의 갱년기'
본인은 아직 아니라고 해맑다. 웃고 넘긴다. 그리고 더 이상 이 사람이 궁금하지 않다. 말을 닫고 그냥 듣는다. 언제인가 열정이었을지도 모를 관계의 진자가 서서히 냉정으로 옮겨간다.
꼭 연인이 아니어도 서로의 관계 추가 냉정과 열정을 오간다. 나이는 내게 체력과 순발력을 떨어뜨렸지만 노련함을 주었다. 열정으로 움직일 때 하늘 끝까지 들뜨지 않고 냉정으로 옮겨갈 때 바닥까지 처져 서운하지 않다.
앞에 앉은 상대가 시댁, 남편, 부모, 회사 동료에 대한 얘기를 한다. 지루하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듣던 거다. 어지간히 단조로운 삶이다. 테두리를 그어 벗어나지 않는 생활들. 어찌 보면 누군가는 바랄법한 안전한 삶이다.
난 내 특기를 발휘 중이다. 지루해하지 않고 들어주기. 마주 앉은 사람에 대한 예의고 여행 동행자에 대한 배려이다. 재미없어도 실망해도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재미없는 얘기를 늘어놓았으리라. 그때 무안 주지 않고 그 누군가는 들어줬을 거다. 내 기억에 없더라도.
오늘 저녁은 듣지 않는 사람에게 이젠 좀 들으라고 광화문에 갈 거다. 그 사람이 앉은 곳은 써준 것을 읽는 자리가 아니라 다수의 말을 경청하는 자리다.
한 때 자신에게 열정으로 향했던 사람들의 추가 이제는 냉정으로 옮겨갔음도 받아들여야 하는 자리다. 이젠 자기 자기로 돌아가야 한다. 예술품도 그렇듯이 원래 자기 자리에 있을 때 조화로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