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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Nov 28. 2016

그곳이 잊힐리야

부라보!!! 토스카나

여행 전, 가장 기대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머무는 곳이 하나 이상이면 출발 전 그곳을 떠올리며 설렌다. 이탈리아에서는 토스카나이다. 머무는 피렌체가 토스카나 지역의 주도이다. 


로마와 피렌체 사이 중부는 와이너리며 곡창지대다. 완만한 구릉지, 펼쳐진 넓은 벌판, 사이프러스 나무길이 있다. PC 배경화면 같은 곳이다. 그래서 영화에도 나온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집으로.


기대를 넘어선 순간, 각인된다


오늘은 와이너리 투어이다. 와인을 좋아하냐고? 아니다. 난 술을 못한다. 한 잔으로 온몸이 불타고 눈까지 충혈된다. 알코올에 관해서는 연비가 꽤나 좋은 거다. 난 포도밭을, 토스카나의 경치를 보러 갈 거다. 출발 전 날씨가 좋다. 어제 내린 비가 그쳤다. 덩달아 멤버도 좋다. 하늘이 내게 토스카나를 즐기라 축복해주고 있다.


삶처럼 여행도 우연이 만들어내는 것이 크다. 들어올 수 있게 비워주면 예상외의 것이 툭치며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한다. 오히려 기대한 것에는 적잖이 실망한다. 크면 클수록 더하다. 하지만!!! 그 기대를 넘는 순간, 그것이 각인된다. 눈을 감고도 그곳이 그려진다.

낮고 둥글둥글한 언덕 아래로 포도밭이 펼쳐진다. 여름이라면 밀과 해바라기로 채워진 곳도 볼 수 있으리라. 서울의 고층건물 사이사이 조각난 하늘과는 다른 하늘이 이어진다. 그래!!! 하늘은 원래 이런 거였어. 서서 눈길을 준 모든 곳에 하늘이 있다. 일부러 올려다보지 않더라도 구릉에 나무에 하늘이 같이 이어진다. 


이탈리아 여행 내내 평온하다는 느낌이다. 굳이 이런 들판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낮은 건물 위로도 이런 하늘길이 펼쳐진다. 높은 전망대가 아닌 땅에 발 딛고 서서 시야에 이어지는 하늘, 그 하늘이 내게 포근한 편안함을 줬겠지.


여행을 다니면서 강해지는 확신이 있다. 날씨의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거다. 따뜻하고 햇빛 가득한 여행지에선 현지의 기분 좋은 미소를 자주 접한다. 나도 한결 밝아지지만 그곳 사람들도 유쾌하며 여유 있다. 이즘 되면 혹독한 겨울을 포함한 사계절이 축복인지 아리송하다. 옷 값만 더 들지 싶다.


와인이 자고 있어요!!!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고 제조 과정을 듣는다. 사실 여행에서 돈 걱정 없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와이너리 투어와 식사비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이럴 때 할지 말지 결정하는 기준이 있다. 나중에 후회할까? 후회될 거라면 해야 된다. 평소 무턱대고 쓰던 커피 값을 생각한다면 더 쉽다. 평생 남을 기억으로 채우는데 잘 쓰면 된다.

좋은 향과 달달한 맛이 있어야 술이 넘어가는 나는 고품질 와인이 좋은지 모르겠다. 많이 마시면 다른 술보다 머리가 무지 아프다는 거. 이것이 내가 아는 와인의 전부이다. 설명을 듣다 보니 와인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세계일 듯싶다. 아는 것이 관심을, 그 관심이 소중함으로 이어진다. 


으깨서 버릴 거라 예상한 포도 껍질이 와인에선 중요하다. 이물질이라 씻어 없앨 거라 예상한 껍질 표면의 하얀 성분도 중요하다. 모르면 중요한 것도 버린다. 살면서도 흔히 그러지 않던가. 아마도 좋은 것들을 적잖이 버리며 살았을 거다.


와인에 좋은 포도종은 알이 작고 껍질이 두껍다. 그리고 아주 살짝 씻어 가볍게 분리해 1,2차 단계로 나눠 숙성한다. CF처럼 발로 밟아 으깨는 건 질을 떨어뜨린다. TV는 참 여러 가지로 사실을 왜곡한다. 포도종과 그 해의 날씨 그리고 숙성 과정이 와인의 품질을 결정한다. 2010년에 날씨가 좋았다니 와인 사실 때 참고하시라.


숙성되는 오크통이 저장된 곳은 어둡다. 조도를 많이 낮춰 은은하고 아늑하게 보인다. 이유를 물어보니 와인이 자라고 그랬단다. 잘 자고 좋은 와인으로 보자고. 미소 짓게 만드는 예쁜 말이다. 와인에게 잘 자라고 조명을 낮추는 거. 그만큼 아끼는 거겠지. 아끼면 보듬어 주고 싶고 신경 써주고 싶고 그런 거다.


돌아오는 길에 산지미아노에 들린다. 아기자기한 작은 골목골목과 올라서면 펼쳐지는 토스카나의 풍경이 내게 묻는다. 이탈리아에 이런 아름다운 소도시가 얼마나 많은 걸까?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오는 그 길목에 이런 곳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마도 무심히 지나쳤으리라.


오던 길에 들려 본 시에나의 캄포 광장도, 그곳의 두오모도, 박물관의 전망대도 모두 지워졌다. 인간은 아직 자연을 흉내내기에 부족한 거다. 건축물도 예술품도 내게 이런 행복한 평온함을 주지 못한다. 작아서 아름답고 자연 속에서 평온한 거다.

이런 곳을 고향으로 두고 타지에서 머무는 이들은 눈을 감으면 그곳이 아련히 떠오를 거다. 하루를 보낸 내게 이리 강렬한 포근함이었으면 그들은 더하겠지. 그런 조각조각들이 모여 정지용의 향수처럼 시를 읊게 만드나 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곳이 꿈엔들 잊힐리야... 눈을 감고 떠올린 그곳은 지금도 나를 평온하게 한다. 입가의 미소와 함께 착한 아이가 되는 듯하다. 삶이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을 때 이 기억이 도와줄 거다. 그렇다. 난 살면서 큰 선물 하나를 받은 거다. 고마워 토스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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