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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Oct 17. 2016

그 세대의 여행법

놀이는 그 세대의 문화를 반영한다

대학가의 즐비한 유흥문화를 한탄하는 것에 건축가 서현이 이렇게 얘기한다.


대학가가 먹고 마시는 유흥가로 덮여 있다는 한탄은 새삼스럽지 않다. 문화적 감수성은 뭉개버리고 시험을 위한 시험문제로 채워진 문제집을 외우던 바로 그 학생들이다. 이들이 대학에서 채우는 문화는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먹고 마시기일 수밖에 없다.
- 빨간 도시 | 서현 -


여행도 놀이이니 문화가 채워지는 한 가지 형태일 것이다. 놀이가 무가치하다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놀이에 대한 고민도 없을 거다. 고민이 없다면 다양성도 없다. 음주가무가 꼭 나쁘진 않지만 음주가무 외에 놀이가 없다는 것은 문제 아닌가.


내 부모님 세대에 해외여행은 드문 놀이었을 거다. 그 세대에 문화는 사치고 놀이는 가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먹고사는 것이 급급했던 그때는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세대는 또 다른 의미에서 먹고사는 것이 급급하긴 하지만.

그런 걸 알고 있기에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범벅된 감정으로 부모님께 여행을 권했다.


그런 부모님 입에서 '장가계' 라면이라는 말이 나왔다. 아마 친구들을 통해 듣거나 '죽기 전에 봐야 한다'라는 여행사 멘트를 보셨거나.


보이는 건 사람 손으로 망쳐놓은 자연이었다. 정말, 그대로 두지 않더라.


장가계는 딱 두 가지 부류로 넘쳐났다. 내 부모님 연배 전후의 단체 해외여행을 오신 어르신들이거나 중국의 국내 관광객들이거나.

두 부류의 공통된 놀이문화는 이렇다.

유명한 곳에 빨리빨리 가서 한 번 둘러보고 그 장소의 랜드마크 앞에서 사진 찍기.

덕분에 장가계는 산 정상까지의 케이블카와 고층 엘리베이터 혹은 산을 깎은 차량용 도로들로 도배되어 있다. 심지어 30분 정도 산책으로 갈 수 있는 완만한 곳도 단 한걸음도 걷지 않게 트램이 다닌다.


장가계에 대한 중국 명언이 있다. 여행사 멘트로 꼭 들어간다.

"사람이 늙어서 100세가 된다한들 장가계를 보지 않았다면 늙었다고 할 수 없다"

어떻게 보라고는 얘기 안 했으니 '목적'인 보기만 하면 잘 늙었다는 걸까?


산을 돌려 깎아 도로를 내고 절벽 옆에 시멘트와 철근으로 덕지덕지 발라 엘리베이터를 만든 이 곳에서는 난 같은 인간으로서 미안했다. 맘이 적잖이 불편했다. 밤에 산속 야외무대로 펼쳐진 쇼를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산속에서 조명을 환하게 켜고 스피커로 소리를 높여대면 산에 사는 새는 도대체 언제 잠들 수 있나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의 본연의 목적인 부모님 취향저격은 이룬 것 같았다. 여행 후 그 산들이 장관이었으며 와보길 잘했다고 하셨다. 나야 씁쓸했지만.


세대마다 다를까?


세대는 공통 기억을 공유한다. 같이 겪은 것들이 다른 세대와 차이점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집단주의 향기가 짙은 한국 사회는 아마 이 현상이 좀 더 두드러질 것이다.


단체복과 같은 등산복을 입고 부부동반이나 동창모임으로 여행사 패키지를 끊어 해외여행을 다니는 장년층을 보면서 놀이를 고민해본 적 없는 세대가 겪는 그들만의 놀이 방법이지 싶다. 이건 중국 국내에서 온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먹고사니즘에서 약간 떨어진 여유를 즐겨보자. 그런데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유명하다는 곳에 가서 인증샷을 찍자.


여행 중 이들을 만나면 당신은 어떤가? 고개가 저어지나? 안타까우면서 씁쓸하고 그러면서 불편하고 그런가?


그렇다면 지금 이 세대는 그렇게 많이 다를까?


지금도 남들이 좋다는 곳에 몰려간다. 물론 널린 정보와 편한 예약으로 단체로 가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꼭 봐야 하는 것들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다. 그리고 SNS에 올린다. 보여줘야 하니까. 나 이렇게 남들 하는 것즘 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고. 그런 것에 고개 저으면서 난 남과 다른 여행을 한다고 다녀도 또 인증샷은 필수다. 이번엔 난 남들보다 조금 나은 여유를 즐기고 있다고.


이건 옳다 그르다나 좋나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앞의 글에도 밝혔지만 놀이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거고 처음부터 이거다라고 잘 찾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관심이 없으면 고민도 없고 고민이 없으면 다른 것을 시도할 용기 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비슷해진다. 그리고 반복한다.


비슷하고 반복되면 어때? 내 삶인데 놔두셔.

그래 맞다. 자기 삶이고 자기 방법이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 아니다.


그저 여러 가능성을 내 손으로 차단하고 살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거다.


삶은 용기에 비례해 넓어지거나 줄어든다.
- 아나이스 닌(Anais Nin) -


만약, 알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고 다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아니면 작게라도 지금의 생활의 스트레스를 비껴 나게 해줄 시각이 살짝 변할 기회가 나타난다면.


과연 경제적 여유에서 놀이가 나오는 걸까?


먹고사니즘이 급한데 놀이 방법이 어쩌니 하고 있는 건 배부르고 한가한가? 뭐 그럴 수 있다.

생활비에 쫓기지만 않는다면 저런 건 그때 가서 저절로 되지 뭐. 노는데 무슨 고민? 돈과 시간이 없어서 못 놀지 놀라면 뭐 저런 고민까지 해가며 찾나.


과연 그럴까?

난 경제적 먹고사니즘을 초월한 지인들을 열 손가락 가득히 채울 수 있다. 그런데 경제적 여유가 그다지 도움이 안 되더라. 돈도 시간도 되지만 어찌 보내야 하나 앞에선 공백상태가 된다. 인생에서 그런 건 중요하다고 한 번도 생각해보거나 시도해보지 않은 거지.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기 손으로 장기간 휴가도 반납한다. 그 기간을 지루해하고 초조해하면서.


해보지 않은 것들은 나이가 들수록 한 발 띄기가 더 힘들다. 이건 내가 장담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것은 두렵고 어렵다. 그래서 체력 못지않게 용기가 필요하다. 슬프지만 나이 들면 체력도 용기도 일반적으로 점점 바닥으로 쳐진다.


평소에 고민하고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나중에는 더 어렵다.


용기도 근육운동이 필요하다. 작은 일에 자주 용기를 내다보면 큰 용기를 내기가 쉬워진다.

....

충격 속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건 바로 퀴즈쇼 상금을 타지 못했더라도 세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는 거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었던 거지. 모든 게 내 손에 달렸던 거야. 이걸 깨달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어.

-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 마이케  빈네무트 -


위의 작가의 오랜 동료가 인터뷰 때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뭔가를 처음 배워본 게 언제입니까?"


내겐 약간 변형해서 자신에게 해보는 질문이 있다.

"마지막으로 뭔가 안 해본 것을 한 건 언제인가?" 

이 질문이 가끔 한 발 띄게 하는 용기를 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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