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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슬기로운 병원생활

건강이 최고야

by Helen Teller

병원생활하면서 전엔 몰랐던 것들 느껴본 감정들을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왜 다 착한 사람들만 아픈 거지? 하는 생각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있는 병실은 5인실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이기적인 사람 없다. 이곳에 와서 아프다는 공통점 하나로 만나게 된 인연이지만 선한 사람들만 모아둔 것 같다. 우리 병실에 있는 냉장고는 편의점 저리 가라 수준으로 다양한 메뉴와 제품들이 즐비하다. 한겨울에 수박, 밖에서는 비싸서 엄두도 못 냈던 아기 주먹만 한 딸기, 화장실을 위한 요거트, 입맛 돋울 밑반찬 등등.

우리 병실 냉장고는 뭐든 한 입만 더 먹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바람들로 가득 차 있다.


수술 후 입맛이 슬슬 돌아오려는 찰나에 주위에서 먹을 것을 끝도 없이 내어주시니 밖에서 못 받아보던 대접을 이곳 병실에서 받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변비라고 요구르트 두통에 딸기 키위 굵직한 블루베리를 가득 넣어 주셨다. 이걸 다 먹느라 아침을 못 먹었다. 하지만 이 덕분에 화장실은 다녀왔다.


병실 안에는 가족들의 희생이 보인다. 당장 우리 집에서도 가족들이 내 빈 곳을 채우느라 희생 중이지만 나 옆에 계신 분은 친언니가 매일 먹고 싶은걸 말만 하면 가져다주신다. 문어, 고추장아찌, 대봉감, 귤, 추어탕 등등 말만 하면 뚝딱 다음날 아침에 도착해 음식을 주고 가신다.

내 맞은편 병상에 계시는 어르신은 점심에는 딸이, 오후에는 남편이 와서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식사를 잘 못하시기에 좋다는 것 먹고 싶다는 건 다 사 와서 함께 식사를 하신다. 내가 입원해 있는 이곳은 간호통합병동이라 보호자가 머무는 것이 입원일, 퇴원일, 수술당일만 가능한데 몸상태가 좋지 않아 병동 간호사 분들이 흐린 눈을 해주고 계신다. 그런데 최근에 수간호사가 바뀌었는데 딸에게 남편분에게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병동이 아니다, 감염의 위험이 높은 환자들이 입원한 3차 병원이기에 블라블라 해도 꿋꿋하게 오신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오셨다. 남자분이 여자만 있는 병실에 있는 게 좀 불편하긴 하나 그 마음이 얼마나 애틋하고 아플까 싶어 이해가 된다. 남편분이 계실 땐 그렇지 않으신데 돌아가고 나면 밤새 끙끙 앓으신다. 그 마음을 알기에 발길을 멈추기 어려우실 것 같다.


식사시간이 끝나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마스크를 하고 조끼를 걸치고 링거폴대를 잡고 병동에서부터 외래진료실 입구까지 넓고 기다란 복도를 걷는 행렬이 있다. 늘 병원에서는 누워있다 보니 다들 운동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링거를 맞는 사람 허리보호대를 찬 사람 나처럼 피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사람 얼굴에 붕대를 감은 사람 소변줄을 꽂은 사람들이 보호자와 또는 이곳에서 가까워진 이들과 둘셋씩 짝을 지어 걷는 모습이 먹먹하기도 하고 행진 같기도 하다. 그들의 걸음 속엔 건강할 땐 몰랐을 아쉬움이 있을 것이고 수술로 회복될 날을 기대하며 연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스를 기다리기도 하겠지.

그렇게 돌고 양치하고나면 각자의 침대벙커 속으로 들어가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간호사들은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체온을 측정하느라 겨우 달게 잠든 이를 깨우기도 하면서.


이곳에 와서 새로 배운 것이 있는데 바로 효자손의 역할이다. 그냥 등긁개로만 쓰이는 줄 알고 있을 텐데 이 녀석의 쓸모로 말할 것 같으면 누워서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위치 눌러 불 끄기(수술 후엔 상체를 들거나 팔을 못쓰는 경우가 많으므로) 간호사 호출벨 누르기 발 밑에 있는 이불 올리기 링거폴대 내쪽으로 당기기 떨어진 양말 줍기 등등 그래서 알만한 사람들은 항암 할 때 챙기는 머스트해브 아이템이라고 한다.


아 나는 샤워는 둘째로 하고 머리를 못 감은 지 1주일이 넘었다. 수술부위에 물이 닿으면 안 된다고 하여 머리 감고 싶다고 했더니 병원에서 하면 16,000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병원 1층 상가동에 있는 미용실은 10,000원이라고 알려주신다. 진작 알았으면 며칠 전에 할걸 하루 반나절만 있으면 퇴원을 앞둔 터라 돈이 좀 아까워 참았다. (사실은 다음날 바로 머리 감으러 미용실 갔다. 머리 길다고 15,000원 받으셨는데 하나도 안 아까웠다 그 개운한 기분이란~!!)


창밖이 캄캄해졌다. 이 장면도 두 번만 더 보면 그만 보겠구나 싶다. 당연히 절대로 아쉽지는 않다.

돌아가면 벌써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일단 집에 가면 방수테이프 붙이고 씻고 편하게 자고 싶다. 아이들과 스킨십도 너무 그립고 그립다. 남들보다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해서 참 다행이다.

병원에서 시간이 많아진 나는 유튜브를 보며 나가서 싹 갈아엎어야 할 내 식단을 공부하고 있다. 많이 바꿔야겠다. 맛있는 건 다 안된다고 하니 좀 슬프지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하니까. 재발하지 말아야 하니까.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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