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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집에 가고 싶어요.

퇴원을 꿈꾸며

by Helen Teller

어제저녁 항생제를 마지막으로 수액을 뺐더니 세상 편하다.

이토록 편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어제 소독을 하러 들렀던 유방재건과 교수님이 지금 정도면 이번주말에 퇴원이 가능할 것 같다고 하신다. 제발 주말에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병원에서는 하는 일 없이 시간이 잘 간다. 입원하고 수술하고 3일 정도는 내리 잠만 잤더랬다.

오늘은 6일째다 다인실이라 불편한 것도 있지만 챙겨주는 어르신들이 있어서 덜 외롭다 밤에 앓는 소리나 수액으로 화장실을 드나들 때 생기는 소음은 입원 시에 받았던 귀마개가 요긴하게 쓰인다.

다들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이라 모자나 두건을 두르고 계시는데 나는 뭐 그에 비하면 너무 멀쩡하다.

하긴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젊기도 하지, 남과 나를 비교해서 더 낫다고 하는 건 좀 무리가 있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눈에는 젊어서 안쓰런 환자일 것이고, 내가 보는 그들의 모습은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억지로 쉬게 되면서 내가 있던 곳에 빈자리가 생겼다.

집에서는 남편과 아이들이 고생이고 방학이라 집에서 밥 먹는 아이들을 챙기러 오는 친정엄마는 무슨 죄일까? 가게는 비워져 있는데 손님들의 전화에 주차장 사장님이 고생하시고, 다인실에서 노트북을 켜 놓고 전화를 받아내는 나도 괴롭다. 어찌 보면 내 빈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티가 난다는 말이 내가 있던 자리에도 해당되는 말이니 말이다.


당분간은 내 몸먼저 생각하라고 하나님이 강제로 쉬게 하셨나 싶기도 하다.

집을 비운 지 3일째 되던 날 밤 "자기가 하는 일이 너무 많았네, 내가 더 많이 할게"라는 남편의 카톡이 왔다. 그렇게 내 자리를 기억해 주고 알아주는 남편이 고마워 뭉클했다. 영상통화로 마주하는 아이들도 씩씩하게 잘 있어주어서, 밥 잘 먹고 너무 잘 먹어서 고맙고 또 고맙다. 매일 전화로 괜찮냐 물으시는 시어머니도 출근해서 늘 전화하는 우리 아빠도. 이렇게 혼자 하는 시간이 길어지기에 소소한 감사함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참 감사한 시간이다. 집에 돌아가면 이 감사함이 얼마나 길어질지 장담은 못하겠지만 최대한 길게 지속되기를 바라본다. 함께 있어주는 엄마 아내 딸 며느리가 되어야지.


삶에는 up and down 이 분명히 존해한다고 믿는다.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도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평균값은 모두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더 잘나 보이는 사람도 슬픈 사연이 있고 세상 불쌍하고 안쓰러운 이도 남부러울 것이 없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또 자라고 내일을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 게 아닌가 한다.


없어져보니 내가 있던 자리가 보이고

아파보니 주변사람들의 관심과 위로가 보이고

떠나보니 멋들어지지 않은 내 집이 귀한 곳이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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