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일상의 고찰 11 : 나의 일상을 자식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

by 게을러영
KakaoTalk_20251027_130806035.jpg MDF 밥상에 이쁜 커버를 씌워 단상 오브제로 재탄생


SECENE 1.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쌀쌀함을 얼굴에 안고 베란다 창문을 연다.

커피와 샐러드로 아침을 먹으며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설렘이다. 내 아들이 다녔던 학교의 아이들이 어느덧 손자 나이이다.

그들의 올망졸망한 걸음에서 내 아들이 보였고, 내 손자가 상상된다. 재잘거림은 메아리로 공명된다.


아주 오래된 접이식 상이 있다.

윗 면에 스크레치가 많고 부분 떨어진 곳이 있어서 버리려다가, 언젠가는 사용가능할 거 같아서 얻어다 쟁여놓은 커피나무 프린트가 있는 생두 포대가 생각나서 그것으로 씌웠다. 그리고 저 상과 등받이 의자는 우리 집 베란다의 오브제가 되었다.



SECENE 2.


어머니의 상을 치르고 처음으로 집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기에 당연히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는 알 수가 없었고, 수리공의 도움으로 들어온 집의 거실은 어질러져 있었다.

여행을 가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신 어머니가 촉박한 비행기 시간에 맞춰 나가신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마지막 메시지는 택시를 탔다는 것이었고, 지방에서 인천 공항까지 가는 버스를 놓칠까 봐 안절부절못한 모습을 담은 글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허망하게 가셨고, 널브러진 어머니의 물건을 치우다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환기를 시키려고 베란다로 나섰다.

텅 빈 베란다에 유일하게 있는 상과 등받이 의자는 다른 곳과 달리 너무나 정돈된 모습이었다.

뒤에서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아이쿠, 늬엄마 뭘 저렇게 아끼며 살았냐? 버려도 하나도 안 이상한 걸 굳이 껴안고 살았네...... 불쌍한 것......



SECENE 3.


얼마나 잤을까?

어미도 없는 집에서 자지 말고 본인 집으로 가자는 할머니의 권유를 만류하고 어머니 침대에서 잤다.

어머니의 죽음이 전혀 인식되지 않는 장례식을 치르면서 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문상객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일 년 전 귀국했을 때 어머니가 싱크대 상부장에서 원두를 꺼내 커피를 내려주셨던 것이 생각나서 열어보았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산미가 풍부한 커피인 예가체프가 있었다.

어머니는 커피를 드시면서 과일향이니 꽃향이니 하며 자신의 취향을 피력한 적이 꽤 되었는데, 커피 맛을 모르는 내게는 그저 허왕되게 들렸을 뿐인데 오늘은 산미가 뭔지 다가온다.


햇살이 밝게 비추는 베란다로 나가 억지로 저 상 앞에 앉아본다.

상도 너무 작고, 등받이 앉은뱅이 의자는 더 작다.

상 위에서 발견한 진한 초콜릿 색이 혹시 커피 자국은 아닐까 싶어 어머니의 시선으로 하루를 상상하고 싶었다.

상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뒤집어 보았다. 테이프로 붙인 포장이 보여 그것을 살짝 열고 보니, 낯이 있는 익숙한 상이다. 어릴 적 색종이나 도화지를 칼로 오릴 때 두툼한 신문지를 깔고 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했다가, 선명하게 드러난 상 표면의 칼자국 때문에 등짝스매싱과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완전 목재도 아닌 MDF 싸구려 상인데 왜 굳이 이것을 보관하고 있었을까? 할머니 말대로 어머니의 지나친 절약 정신뿐이었을까?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내가 졸업한 학교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하고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베란다 문을 열고 '밥 먹어'를 외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좀 더 축구를 하려고 짐짓 못 들은 체하면 더 큰 소리로 불러서 창피함을 배가시켰던 장면이다.

갑자기 무언가가 머리를 확 때린다.

이게 이 상의 효용이었구나.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추억 위에 어머니의 일상을 덧붙여 새로운 오브제를 창조한 것이다.


이제 곧 나의 일상으로 떠나야 한다.

어머니의 유품으로 어머니의 필통과 이 상을 챙겨 가야겠다.

베란다 문을 닫으며 아이들의 환호와 웅성거림을 잠재운다.

내 어머니의 추억도 함께 말이다.






사족 : 이 글은 콩트입니다~ SECENE2와 SECENE3는 작가의 상상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 가을 상상은 다른 계절보다 진하고 크네요~ 작가님들은 어떠신지요? ^^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젊은 엄마는 비설(飛雪)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