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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르치려구?

배움 1: '한국어 교원' 자격증 취득기(記)

by 게을러영

작년 2월 초순쯤 나는 새로운 일을 기획했다.

한 달여간 고민했던 한국어교원 2급 자격증 획득을 위한 등록을 마쳤다.

J의 성향답게 꼼꼼히 알아보았다.

몇 가지 방법 중 선택한 방법은 원격평생교육원을 통해 필요 학점을 이수하고 학점은행제 등록을 하여 최종 국립국어원의 자격증 심사에 통과하면 되는 수순을 택하였다.

지난 1년여간의 나의 노력과 시간 할애는 엄청 컸다고 느꼈는데 법적 수순은 딱 2줄로 정리가 되니 좀 당황스럽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 결과는 명료한 몇 줄이지만, 행간은 훨씬 더 많은 스토리와 감정을 포함한다.


명색이 교육전공 출신인데 교육학 관련 전공필수 과목은 껌이라고 생각한 것부터 패착의 시작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초면인 학자들이 너무 많았다. 구면은 분들은 기껏해야 파블로브, 스키너, 촘스키, 부루너, 비고츠키, 크라센 등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가장 어려웠던 건 한국어문법론, 한국어음운론, 한국어어휘론, 한국어발음론이었다.

40년도 훨씬 전인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최고 전력의 펌프로 끌어올려봤자 올라온 건 겨우 구개음화, 경음화, 격음화정도였고 내가 아는 철자법은 틀린 게 수두룩 빽빽이었다.

갈수록 그런 얄팍한 지식과 기억력으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걸 후회하고 있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빼박의 시간이었다.


직장을 다녀는 까닭에 주중의 수업은 언감생심이었고, 주말에 원격 강의를 몰아 듣고, 2번의 퀴즈와 토론을 하고 과제를 제출했다. 그래도 요기까지는 견딜만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시험인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모두 치러야 한 과목이 완결된다. 당연히 학점도 나오므로 대충 할 수도 없다.


아무래도 시험이 가장 부담이 되었다. 오픈북이기는 하나 생각보다 문제가 조잡하여 책을 꼼꼼히 살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 꽤 되었고, 어디에 그 내용이 나오는지를 잘 살펴서 메모를 해야 했다.


지난주 드디어 마지막 두 과목의 기말고사를 마치며 대망의 피니시라인을 끊었다. 마지막 시험이었고, 시간도 좀 여유가 있어서 진짜 열공하여 응시하였다. 써머리도 열심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복습까지 하면서 만점의 의지를 불태웠다.

a4용지를 세장이나 이어붙이거나(左) 두 장을 세로로 이어붙여서 (右) 각과별로 키워드를 작성함

또 중간고사 때 답이 '시간체계'였는데 ''시간쳬계'라고 기입한 걸 전혀 인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점수확인 때 '왜??'를 외치다가 '앗, 노안 때문에!!'의 굴욕을 맛보았다. 요번 주관식 답안은 절대 두 번의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는 각오로 몇 번씩 살폈다.


제한시간 3분을 남겨두고 드디어 <제출>을 누르고 나는 환희의 일갈을 하였다.

I'm finished!



삼십 년 넘게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또 가르치는 걸 목표로 제2의 인생을 계획한다.

물론 평생 한 도둑질이라 자신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르치는 건 투명한 작업이다. 교사의 실력과 자신감이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현직에 있을 때도 그건 바로미터였다. 내가 빵빵하게 수업연구를 하고 들어갈 때 나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그러나 교재 연구는 수업만 연구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적절한 유머도 같이 연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력 없는 교사는 용서받아도 재미없는 교사는 용서받을 수 없다.'라는 것이 평소 내 지론이기 때문이다. 사실 평생 중국어 초급 수준의 수업만 한 나로서는 중국어를 어렵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재밌게 가르치느냐가 늘 관건이었다.

요즘 학생들의 수업태도에 대한 여러 말들이 있고 실제 많은 힘든 상황이었기에 몇몇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을 찾고 맞추는 것은 짜릿한 기쁨이다. 그 반짝거림의 확대를 위하여 재밌는 수업은 필수요건이 되었다. 그게 내 35년 교직생활의 노하우였다.


수업은 커뮤니케이션이다.

학습자의 수준과 눈높이, 성향을 파악하여 그들과 소통하는 건 재미있는 작업이다.

이제 성인 학습자를, 그것도 다양한 국적의 학습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꿈을 키우고 있다. 아직은 꿈이다. 자격증을 내 손에 잡을 수 있는 하반기에나 가능할 얘기이고 그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더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꿰찰 수 있다는 잠언처럼 준비된 내게도 그 기회가 오길 조용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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