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살아가기 1; 완경의 고마움
앗, 혈의 누!(血의 漏)
자고 일어난 잠자리에서 발견한 선명한 핏자국...
이런 이런... 에이씨... 웬 주책?....
근 일 년 만에 찾아온 생리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알렸다.
왜 나는 그렇게 매번 흘렸을까?
아무리 두꺼운 생리대를 해도 생리대 두 장을 이어 붙여도 소용없었고, 수건을 몇 장을 대고 자도 수건을 피하여 하얀 요 커버나 침대 패드에 발견되는 혈흔 자국은 바쁜 아침에 사람을 미치게 했다. 학창 시절 엄마의 여지없는 속사포 잔소리와 등짝스매싱은 기분 더러운 아침을 맞게 했고, 자면서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하냐며 중얼거리면서 빈속으로 등교하기 일쑤였다. 독립한 후로는 아예 생리 즈음해서는 침대에서 내려와 맨바닥에서 아무것도 깔지 않고 자기도 하였다. (엄마가 빨아줄 때는 몰랐는데 이불이나 요 커버를 빠는 것은 아주 큰 빨래였다는 걸 내가 빨면서 절감했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반복되는 월례 행사를 한 번도 짜증 안 내고 치른 적이 없었다.
출근하기 바쁜 아침에 세탁기를 돌릴 수도 없고... 그냥 두고 가면 낭패는 더 심해지고... 후루룩 침대패드를 벗겨 욕조에 던지고 물을 틀었다. 그리고 항상 생리대를 넣어두던 서랍을 열었는데 아뿔싸! 아무것도 없다. 아차차... 이제 완전히 끝난 줄 알고 사놓지 않았구나..
생각해 보니 마트에서 세일할 때마다 무더기로 사놓던 습관도 완전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꽤 되었다. 정확히 28일 주기로 하던 것이 어느 순간 두 달에 한 번, 세 달에 한 번, 어떨 때는 미친 듯이 한 달에 두 번. 그렇게 종 잡을 수 없이 사람을 놀리더니 일 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길래 완전히 폐경이라고 여겼는데..
우선 급한 대로 예전에 만들어 둔 면 생리대를 꺼내 처리했다.
하루 종일 묵직한 요통과 아랫배의 통증, 더부룩함 등 잊었던 생리 때의 고통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내 일상을 흔들면서 하루를 보내게 하였다.
퇴근 후 욕실에 담가져 있는 커버의 혈흔 자국을 손으로 빡빡 문질러 빨아 탈수까지 해서 널고 나니 기분이 의외로 개운해졌다. 어차피 철이 바뀌어서 한 번을 빨아야 할 패드인데 이런 계기로 빨았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라며 엉뚱한 자위도 했다.
아침엔 그렇게 짜증이 폭발했는데 저녁엔 위로가 되다니! 참으로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하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리대를 사러 나가려다가 퍼뜩 든 생각, 이게 진정 내 생에 마지막 생리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잔뜩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마지막 생리에 대한 나만의 경이로운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일회용 생리대로 마무리를 짓고 싶지는 않았다. 발걸음을 돌려 ‘면 생리대’를 다 꺼내어 하나씩 다림질을 시작했다.
근 사십 년을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만나면서 한 번도 반가워해주지 않았던 나의 생리에 대한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갚고 싶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생리가 고마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억을 짜내니 유일하게 원치 않는 임신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가 나왔을 때만 반가웠을 뿐이었다. 진짜 그때뿐이었다.
요즘에야 ‘초경 파티’라는 생소한 단어도 생기고 축하하는 분위기이지만, 고1이라는 나이의 늦은 나의 초경은 그저 엄마와 비밀을 공유하는 정도였고 그건 환영받을 일도, 비난받을 일도 아닌 관심 밖의 일이었다.
입시라는 중압감에 짓눌려 있던 고3 때의 생리는 그저 컨디션을 다운시키는 짜증 나는 일이었고 여자가 생리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컨디션 난조를 겪어서 남자와의 공정한 입시경쟁에 장애가 된다는 푸념과 하락한 모의고사 점수의 때맞춘 핑곗거리에 불과했다.
대학 때는 모처럼 가는 여행에 항상 걸려서 한 상자분의 생리대를 챙기며 항상 불평을 했었고 다이어트의 방법으로 수영을 배울 때도 한 달의 1/4은 못 나가도 수강료는 다 내야 하는 억울함은 그저 여자들만 아는 손해였기에 화는 항상 배가되기 일쑤였다.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게 생리를 미워하고 귀찮아하기만 했을까?
생명의 모태라는 책에서나 나올만한 얘기라도 인용하며 귀하게 여긴 적은 왜 한 번도 없었을까?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소설에서 나왔듯이 남자들이 생리를 했다면 생리대에 면세를 하고 생리일은 휴무를 하고 생리를 찬양하는 작업들을 사회적으로 크게 하였을 텐데...
다 떠나서 나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천시를 하였으니 내 몸을 학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뻐해 주자! 귀하게 여겨주자!
그렇게 잘 다린 면 생리대를 예쁜 상자에 담았다. 항상 스케쥴러에 생리첫날을 ‘♡-start’로 기록했는데 요번은 ‘thanks!♡-start’로 표시하고 묵직한 요통과 소화불량을 달래고자 와인 한잔을 집어 들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사랑스러운 아들 둘을 낳게 해 준 원동력!
폐경(閉經)이라는 쓸모없고 낡은 이미지의 단어가 아닌 그동안 수고한 노력을 치하하고자 완경(完經)이란 단어로 승화시키고 싶었다.
매번 새어 버린 혈흔으로 짜증부터 내었던 혈의 누(血의 漏)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혈의 누(血의 淚)의 조용한 의식은 그렇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