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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같은 날

일상의 고찰 6 : 나는 왜 무책임과 불인정에 분노하는가?

by 게을러영

그런 날이 있다.

하나가 꼬이기 시작하고 계속 안 좋은 일이 연거푸 일어나는 날.

그런 거지 같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어제 아침에 재직했던 전 직장의 주무관님한테 전화가 왔다.

퇴직한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무슨 일일까 싶어 두려움과 반가움을 반반씩 안고 전화를 받았다.

주무관님은 별다른 인사 없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고 요지인즉 건강보험 미납액이 있으니 송금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송금이야 어렵지 않은데, 월급에서 원천징수되는 건강보험료가 무슨 이유로 미납액이 발생되었는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분명히 마지막 월급명세서에서 건강보험료가 공제된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이리저리 말은 했지만 나는 조금도 납득이 되지 않았고, 내 질문에 얼버무리면서 횡설수설하였다.

자세한 건 직접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문의해 보라는 말로 전화를 마쳤다.


결국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문의를 했고 전모를 알게 되었다.

그가 알려준 대로 35년 전 발령 때부터의 문제는 결단코 아니었고, 사업체에서 나의 퇴직 신고를 기한보다 늦게 해서 3월분 직장건강보험료가 부가된 것이었다. 여하튼 늦게라도 퇴직이 확인되었으니 한 달 후 환급조치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주무관은 자신의 실책을 감추려고 이렇게 저렇게 말을 돌린 것이었다.


다시 전화하여 변명할 기회를 줬으나 그는 똑같이 무책임으로 일관하였다. 결국 공단에서 알려준 진상을 얘기하며 '나 같으면 실수를 먼저 인정하고 사과와 양해를 구하겠다.'라고 하자 그제야 그는 사과를 했다.

설왕설래와 쳇바퀴 돌 듯한 말들이 계속되고 여하튼 형식적이라도 사과를 받았으니 마무리를 지려고 할 때 그의 마지막 말이 말문을 막히게 했다.

"4월에 환급되면 제가 꼭 신경 써서 바로 이체해 드릴게요. 걱정마세요~"

끝까지 자기가 싸놓은 똥내를 이런 얄팍한 신문지 한 장으로 덮으려고 하다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아닌데, 본인의 실책에 대한 빠른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 '그러세요~'라고 받아들이는 게 인지상정이다. 조직 안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가끔은 사과를 하기도 하고 사과를 받기도 하면서 그렇게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데 예외는 항상 있는 법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바로 저 주무관과 같은 부류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런 인간들이 출세의 기술이 좋아서 승진가도를 달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다.


지금 나라 꼴도 다르지 않다.

좋은 머리를 가지고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우위를 점한 파시즘의 권력들이 위정하고 있다.

양심과 반성을 모르는 인간들이 백일 넘게 정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유일하게 인정된 폭력인 '법'을 입맛대로 재단하고 있다.


거의 매일같이 집회의 현장에 가기 위해 주변의 친한 지인들에게 독려를 하지만 결국은 혼자 가는 일이 잦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가슴은 시리다.

오늘도 내일도 혹시나 하는 맘에 카톡을 쓰면서 스스로 '기대는 말자'를 다짐하지만 독려가 안될 때 쓰라림의 딱지는 단단해지지 않는다.


거지 같은 날,

수미쌍관의 미는 다음으로 장식한다.


정치성향도 지향점도 같은 모임 사람들과 3월 초에 만나기로 약속한 28일이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3월 말에는 헌재의 판결도 끝나고 좀 안정되었을 것이라 여겨서 택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거지 같은 날들이 지속되고 결국 모임의 성사에 대한 의견들이 어제 아침에 오갈 때, 나는 '다 같이 집회에 참석하고 난 후 저녁식사를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조심스럽게 했다.


그 톡방 구성원의 마음은 모두 같았지만 집회 참석에 대한 실천은 매일, 주말만, 불참의 세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불참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빌드업을 하였고, 긍정적인 대답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만 하루가 지나도록 모든 이들이 읽었지만 아무런 답이 없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의 카운트펀치를 맞고 지금까지도 헤롱거리고 있다.


벚꽃이 피기 전에 탄핵이 인용될 줄 알았는데 백일이 넘도록 인용되지 않아서 벚꽃엔딩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에 어제 집회 마지막 노래로 '벚꽃엔딩'을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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