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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 인생 8할의 지분은 나야

가족 3: 부모의 자식 사랑에 대한 고찰

by 게을러영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인 '폭삭 속았수다'가 지난 21일(금)에 새로운 시즌인 네 편이 한꺼번에 업로드되었다.

주된 내용은 금명의 연애와 결혼에 관한 것이었다.

금명이네의 어려운 가정환경을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 영범(금명의 남친)의 엄마 부용은 결국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아들의 결혼을 파혼시키고 아들에게 집착하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늬 인생 8할의 지분은 나야."


흔히 드라마의 소재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식과 자신의 인생을 동일시하여 거기서 파생되는 갈등이다.


금명이 엄마 애순은 금명이를 위해 집을 팔아 유학비를 대고, 전화를 받지 않는 딸의 안위가 걱정되어 무조건 상경하여 연탄가스를 맡고 헤매는 금명이를 살리는 기적 같은 모성애를 발휘하였다.


누구나 부모라면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애순도, 부용도 그 명제는 같았지만 관점과 표현의 차이가 확연히 달랐다.


애순의 사랑법은 대가를 원하지 않았고 집착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자식에게 부담 아닌 사랑으로 인식되게끔 표현하였다. 자식의 인생에 지분을 전혀 요청하지도, 자식과 자신의 인생을 동일시 하지도 않았다.

이것의 모든 반대가 부용의 사랑법이었다.


부용과 애순의 대화에서 부용은 애순에게 '할 말은 하겠다.'며 전혀 거름막 없는 막말을 쏟아내고는 돌을 내려놔서 속이 시원하다고 얘기했다. 애순은 그 돌 어디다 내려놓으셨는지 아냐며 결국 자식인 영범한테 내려놓았다고 조근조근 팩폭을 날렸다.

부용의 사랑법은 결국 자신도 자식도 모두 파멸의 길로 이끈 케이스이다.


명색이 고등교육을 받은 요즘의 내 또래의 부모들은 머리로는 이것을 경계하고 항상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가슴으로는 여전히 여지가 남아있다. 특히 세상의 잣대로 볼 때 잘난 자식을 두었을 경우 왈가왈부가 심하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회적 성공이 진행 중인 둘째 아이의 경우,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아까워서 어떻게 장가를 보내냐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농담을 가장한 진심을 칼같이 잘라 말한다. '난 지분이 없어요.'


초등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듣고 자란 그 아이는 자기 주도적 학습이 뛰어나서 사교육을 받은 건 인강 수업뿐이었다. 한 달에 채 십만원도 안 되는 연회비가 전부였고 대학도 석박사 유학코스도 모두 장학금으로 충당하였기에 다른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평균 교육비를 따지면 훨씬 적게 들었다.

부모로서 당연한 양육 외에 더한 것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난 그 아이에게 지분을 요구할 권리도 이유도 없다.


그런 내가 딱 한번 부용처럼 내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아이와 대립을 한 적이 있었다.

그건 대입과 관련된 것이었다.

A대와 B대를 수시지원하여 둘 다 1차 합격을 한 상태에서 마지막 면접날짜와 시간까지도 겹친 상황이었다. 나는 A대를, 아들은 B대로 면접을 가야 한다고 팽팽히 맞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일빠로 택하는 A대를 놓치기가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아들은 영재고 때 들은 수업을 모두 학점으로 인정해줘서 조기졸업을 할 수 있는 B대를 원했고 결국 나는 아들의 선택에 백기투항했다.

영재고의 같은 상황의 엄마들과의 톡방은 우습게도 딱 두 부류로 나뉘었다. 엄마의 뜻을 관철한 파와 자식의 뜻을 꺾지 못한 파로... 자식의 뜻을 꺾지 못한 엄마들은 적지 않은 속상함과 함께 이상한 패배감까지 느꼈는데 아들의 선택이 맞았다는 증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들은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것을 착착 진행하였고 박사학위까지 잘 마쳤다.


그때 만약 내 고집대로 했더라면 그래서 지금의 모습과 달랐더라면 그 원망과 책임은 누가 질 수 있었을까?

단지 자식의 방황을 목도해야 하는 벌이라면 차라리 가벼웠을텐데...내 욕심의 결과라고 자책한다고 해서 무슨 책임을 질 수 있었을까?

결론은 단순하다. 자식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면 된다.

부모노릇을 하는 것은 줄타기이다.

자식과의 관계에서 밀땅을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강도, 빈도도 고려하여 항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것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바로 나락이다. 그 고통은 오롯이 부모 몫이다.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자식은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 경우를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만 둘인 내가 그들과의 톡방의 이름을 처음에는 '내새끼들'이라고 썼다. 원초적 본능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었는데 몇 번의 자성 끝에 톡방의 이름을 바꿨다.

'성인된 자식들'


내 품을 떠난 성인의 자식과 공존하는 법은 타인을 대하는 것처럼 존중하고, 무심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제 내 품을 떠난 자식에게 연연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나에게만 쏟자.


가족톡방에 새 소식 올라오고 답이 올라오고 숫자가 차차 적어지고 1까지 모두 지워지면 '다 무탈하구나'라고 여긴다.

'연락 없는 자식에게 먼저 개톡하지 않기'라고 쓴 포스트잇이 내 노트북에 붙여있다.

'잘 지내니?'썼다 지웠다를 반복하지만 결국 안 보내는 것으로 오늘도 실천한다.


#폭삭속았수다 #사랑과집착 #성인자식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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