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일상의 고찰 5: '희망 고문'이 아니라 '희망 키움'

by 게을러영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어제 후배의 톡에서 발견한 문구가 탁 걸렸다. 박범신의 '라마스테'를 읽고 있다며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네팔에 꼭 가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우리의 언어 습관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거의 희박함을 동반한 희망 고문이다.

사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함정이 있다.


일단 ‘언젠가’에 대한 의문이다.

막연한 희망이자 혹시나에 한 발 걸치는 투척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기회가 된다면’은 가정법이다.

'언젠가'와 '기회가 된다면'의 이중의 잠금으로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진다.


이 말의 또 다른 용례는 인사의 마무리에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헤어질 때, ‘시간 될 때 또 보자’ 또는 ‘기회 되면 밥 먹자’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이건 그냥 인사치레이다. 진짜로 보거나 밥 먹을 생각이었으면 시간 약속을 한다.




그런데 ‘언젠가'와 '기회가 될 때’가 진짜로 짠하고 나를 찾아줄 때가 있다.

유퀴즈에 나온 김수지 아나운서는 500번이나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지고 다른 직장을 다니다가 별 기대 없이 응시한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을 하게 되었고, 700번이나 보낸 작사가 거절되었어도 지금은 저작권료가 월급보다 더 많은 위치에 있다고 얘기했다.

누구에게나 때가 있으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남과의 비교를 멈추고 그 에너지를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힘을 빼고 묵묵히 준비하며 일상을 살아나갈 때 기회는 온다는 것이다. 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인생을 역전시키는 이런 기회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이다. 천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기회인 것이다.

기회는 뒷머리가 없어서 앞머리가 보일 때 잡아야 한다고 일찍이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말했다.

그만큼 어렵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뒤에 숨어 많은 것을 미루고 있지는 않는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의 없는 뒷머리만 잡으려고 헛손질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큰 한 방을 노리는 젊었을 때의 호기는 이미 사라졌다.

지금은 저 한 방의 기회를 몇 만 분의 일로 잘라서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감사하고 싶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인 것처럼 기회도 강도가 아니라 빈도로 맞이하고 싶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반이 조금 지나간다.

브런치 생태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커다란 숲도 있고 , 숲까지는 아니어도 이쁜 정원도 있고, 정원까지는 아니어도 큰 나무가 있고, 아예 나처럼 밟힐지도 모르는 막 자라나는 새싹도 있다.

내 새싹에 한 모금의 물을 주러 오시는 여러 작가님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들의 꽃밭에 놀러 가서 감상과 후향을 누리는 것이 요즘 나의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바로 실천하는 방법이다.




#기회 #준비 #희망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해방된 공노비의 첫 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