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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짠 사과도 있어요?

배움 3: 퇴직 교사의 세상 배우기 2 - 오프닝 멘트 작성 요령

by 게을러영

지난번에 '해방된 공노비의 첫 외출'이란 제목으로 김수현 아트홀에서 진행하는 <2025 라디오 방송 클래스> 합격 및 첫 수업에 대한 소회를 기술한 적이 있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지난주 수업의 주제였던 <오프닝멘트 쓰기>에 관한 내용을 쓰겠다.



오프닝멘트는 프로그램의 간판이고, 우리가 충분히 알 수 있는 유명한 프로그램의 그것은 큰 특징들이 있다.

올해 50주년을 넘긴 '라디오 여성시대'의 경우 오프닝멘트가 2분 정도로 긴 편에 속하고, '정오의 희망곡' 같은 경우는 청취자가 보낸 문자를 오프닝 멘트에 활용하여 청취자와의 소통을 더욱 강조하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35년 동안 작가가 계속 손글씨로만 대본을 작성하여 그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한다고 한다.


오프닝멘트는 그 프로그램의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작가들이 아주 공을 들인다고 한다.

3rd작가까지 둔 아주 유명한 메인작가라 할지라도 꼭 본인이 작성하고 그 1분 정도의 멘트를 위하여 하루 종일 숙고에 숙고를 더한다고 한다.


라디오를 습관적으로 틀어 놓고 흘려듣는 청취자의 입장에서 저런 단단한 그물코가 숨어있는지도, 더구나 누군가의 머리를 헤집고 나오는 결과물일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무슨 이름 붙은 날에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그것을 언급하고, 첫눈이 오는 등 날씨의 변화 역시 항상 제시되니까 천편일률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 솔직히는 요 석 달 동안 이렇게 온 나라가 지옥을 헤맬 때도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언급한 곳이 없었고 매일 날씨 타령, 맛집 타령만 언급하여 '어디 딴 나라에 사나?'라는 짜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은 다 나름의 속사정이 있는 법이다.

대중성을 가장 큰 모토로 하는 라디오 그 중에서도 오프닝멘트는 대중성에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오프닝멘트를 작성하는 몇 가지의 팁을 기술하자면,


1. 오프닝멘트는 첫 대면이므로 우울감이 들지 않도록 써야 하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해야 한다. 월요일은 한 주의 시작이므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멘트를 써야 하고, 목요일은 업무가 가장 바쁜 날이므로 위로와 이해를 주는 톤으로 , 금요일과 토요일은 힐링의 느낌으로, 일요일은 다음 주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의 느낌을 나타내야 한다.


2. 날씨나 절기등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그것이 어떤 누구에게도 비호감을 주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그래서 민감한 주제는 되도록 피한다.


3. 시, 수필, 소설 등에서 인용한 것도 편하게 한 줄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인데 반드시 모두 출처를 밝혀야 한다.


4. 처음부터 작가의 시선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 작가의 의도를 쓰면 안 되고 굳이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다면 뒷부분에 슬쩍 껴 넣어야 한다.


5. 가장 일반적인 길이는 1분 30초 정도이나 꼭 맞출 필요는 없다. 만약 넘기게 되면 사이에 음악을 끼워 넣고 한 템포 쉬고 이어서 하면 된다.


6. 날짜나 타이틀(sinal up -down)을 먼저 언급하고 오프닝멘트를 할 수도 있고 순서를 바꿔도 무방하다.


7. 1인 진행인지 2인 진행인지에 따라 멘트의 길이도 달라져야 한다.


8. 너무 시의성이나 변동성 있는 걸 쓰면 안 된다. 이것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인데 녹화분의 경우 왕왕 바꿔야 할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봄 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내용을 이미 녹화했는데 산불이 났다면 그 멘트는 사장되고 산불 예방과 피해자 애도에 대한 내용으로 급하게 바꿔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글이 아닌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문어체가 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인생의 재발견을 했어요.'라는 말보다는 '인생이 바뀌었어요.'라고 말하는 게 훨씬 귀에 잘 붙는다. 그러므로 쓸 때는 항상 말이 되는지 중얼거리면서 써야 한다.


마치 카피라이터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을 아무나 할 수 없는 말로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듯 방송작가는 진행자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되 기본적으로 따뜻함을 장착하고 비평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두 시간의 수업 중 나머지 한 시간은 직접 오프닝멘트를 쓰는 시간이었다.

나는 지난 수업시간에 쓴 기획안인 <심사짠사>라는 코너에 대한 오프닝멘트를 썼다.


내가 기획한 <심사짠사>라는 코너는 '심심한 사과, 짠 사과'의 줄임말로 우리가 평소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것의 뜻을 몰라서 그럼 '짠 사과도 있냐?'는 에피소드를 기초로 그것을 오프닝 멘트로 소개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한자어가 많은데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그 말의 참 뜻과 올바른 용례를 소개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성격을 자연스럽게 오프닝멘트를 활용하여 효과를 거두자는 1석2조의 포석이 숨어있었다.

부끄럽지만, 내가 만든 오프닝멘트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어떤 아이가 엄마한테 이렇게 질문했대요~
"엄마, 왜 사과를 할 때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라고 말해? 그럼 짠 사과도 있는 거야?"라고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심심한 사과보다 더 나은 사과가 짠 사과일까요?

제가 누굽니까? 그래서 얼른 검색을 해봤습니다.

심심한 사과의 앞 두 글자가 한자로서 '심할 심'자와 '깊을 심'자의 조합이에요.
다시 말해 '아주 많이 깊게 사과한다.'는 뜻인 겁니다.
심지어란 말 아시죠? 거기에 나온 심이 바로 '심할 심'자이고요, 심해상어라고 할 때 심해가 '깊은심'자가 들어간 단어입니다.

우리말은 한자어를 기반으로 된 글자가 많아요.
한자문화권인 관계로 순수어와 한자어가 잘 조합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한자를 모르다 보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을 거 같네요~

자, 이제 <심사짠사>를 통해 이렇게 생활에서 자주 쓰이지만 그 뜻을 모르는 한자어나 잘못 사용하는 용례를 살피고 바른 방법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심사짠사> 를 위해 심심한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추~울~발!



#라디오 #오프닝멘트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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