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3: 대전시립미술관 <Van Gogh> 전을 다녀와서
해방된 공노비가 가장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은 주중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남들도 하고 싶고, 가성비 좋은 건 경쟁이 더욱 올라가고 내 기회는 줄어들고... 여태껏 그런 삶을 살아왔었다.
직장인의 굴레를 벗고 개인의 가벼움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주말뿐인데 모두의 상황이 같으니 그 경쟁은 사안에 따라 무한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 빽빽한 경쟁에 숟가락을 얹어야 하는 피로감에 지레 겁먹고 포기할 때도 꽤 되었다. 그래도 '아냐~'를 외치며 경합에 참여한 후, 얻은 것에 비해 털린 게 더 많아 유쾌하지 않은 후회만 남은 적도 꽤 되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백수가 된 후 주중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성수기 요금, 주말요금, 주말과 공휴일 제외'의 피해만 봤던 직장인이 '비성수기 특별가, 주중할인, 평일점심특선'의 혜택과 풍요에 푹 빠져 주중인들의 달콤함을 향유하고 있다.
퇴직자들의 불문율 중 하나가 주중에 사람대접받으며 다니고 주말에는 넷플릭스와 함께 집콕하는 것이다.
지난 수요일, 나는 주중인의 삶을 즐기기 위해 최애 화가인 고흐를 영접하러 <불멸의 화가 반 고흐 in 대전>에 갔다. 가기 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철칙과 대문자 J답게 미리 준비를 했다.
예전에 보았던 'Loving Vincent'를 다시 보고 반고흐에 대한 여러 참고자료들도 살펴봤다. 잊었던 기억들이 되살아 난 후 실물을 영접하니 그 기쁨과 감동은 배가 되었다.
3월 25일부터 시작이고 겨우 일주일이 지났기에 사람이 많지 않을까 염려되어 개관시간인 10시에 맞춰 일찍 갔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맘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3시간에 걸쳐 꼼꼼하게 흠뻑 감상할 수 있었다.
전시회는 그의 생애와 예술적 변곡점에 따라 '네덜란드 시기- 드로잉 시기- 파리 시기- 아를 시기 -생레미 시기-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의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되고 있었다.
고흐빠답게 그동안 뉴욕의 MOMA와 The MET, 가끔 서울에서 열린 고흐전까지 참 많이도 다녔었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누구나 환호하는 작품인 '해바라기, 노란 집, Café Terrace at Night, 별이 빛나는 밤, 아일리스' 같은 화려한 색감과 빛의 표현이 드러난 그의 황금기인 아를 시기의 작품들에 홀릭되었었다.
그런데 요번 전시회에서 나의 눈길을 잡은 것은 생전 고흐가 제일 사랑한 작품인 '감자 먹는 사람들'과 여러 드로잉 작품이었고, 생레미시기에 그린 '슬픔에 잠긴 노인'이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거칠고 투박한 얼굴과 잘 드러난 뼈 마디, 무표정의 얼굴에서 고단한 하층민의 생활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낮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전등의 빛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빛의 방향을 사선으로 처리하여 진짜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였고, 그 전구 바로 밑에 있는 남자와 여자의 얼굴의 하이라이트도 정확하게 잡아내어 입체감을 만들었다. 흑백으로만 저런 모든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재능이다. 드로잉초보인 나는 오직 감탄만 남발할 뿐이었다.
예전 같으면 훅 지나가 버릴만한 드로잉을 한 작품씩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드로잉을 하면서 빛의 방향에 따른 하이라이트의 위치나 표현 방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안목을 좀 키웠기 때문이다. 드로잉은 그림의 기초로써, 이 기본기가 단단해야 그림의 발전이 있기에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그림에 입문한 고흐도 많은 연습을 한 것 같다.
'슬픔에 잠긴 노인'은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고뇌에 찬 노인의 아픔이 온몸에서 느껴진다.
앙상한 주먹과 툭 튀어나온 중수골에서 평생 가난과 고됨이 온몸으로 드러난다. 머리를 숙이고 감싼 저 얼굴은 분명히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한계에 다다른 절망감에 잔뜩 구겨져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발작이 극성일 때 그린 것이라고 한다. 물론 노인을 모델로 하였지만 자신을 투영한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점쳐 본다. 후줄근한 착장과 낡은 구두가 그의 삶을 대변하지만 유일하게 단정하게 묶은 구두 리본이 그의 의지와 처절한 절박함을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저런 마이너의 삶에 더 애정이 가는 것은 반골의 기질이 강한 나의 시각과 일맥상통한 거 같기도 하고, 노인의 삶의 초입에 선 동병상련인 거 같기도 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반 고흐에게 유희도 아니었고 재능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은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비참의 구렁텅이에서 절규하는 순수한 영혼의 절대적 구원행위였을 뿐이다. 살아서 추구했던 모든 것이 그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자아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가야만 따라갈 수 있는 극단적인 운명 속에서 미치광이가 되기를 감수하면서 이성을 향한 외로운 꿈을 홀로 펼치는 것뿐이었다.
첫 벽에 쓰여 있는 그의 생애가 압축된 글을 마주하고 나는 쉽사리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관계로 몇 번을 되뇌다가 결국 필사를 했다.
가슴이 탁 막히면서 눈물이 난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고흐의 비극적인 삶은 그동안 많은 책과 매체를 통해 알려졌고 여전히 그의 마지막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동생 테오에게 평생 짐이 되었던 부담감과 미안함으로 인한 자살 쪽으로 심증을 굳히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고흐에게 태오는 단순히 동생을 뛰어넘어 경제적, 정신적 지주이자 후원자였고 고흐 생전 혹평 일색이었던 세상에서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그렸던 879점 중 유일하게 생전에 팔린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딱 한 점뿐이었다는 것은 나 같은 범인이 생각해도 전업 화가로서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을지 짐작이 간다.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열등감과 인상파 화가들이 대낮의 빛에 대해서만 떠들 때 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밤의 빛을 착안하여 과감한 붓터치로 완성한 천재성 사이에서 얼마나 괴로웠을까!
극복할 수 없는 그 간극의 고통으로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발걸음은 얼마나 처연했을까!
왜 당시 사람들은 고흐를 알아봐 주지 못했을까?
서른일곱이라는 젊은이가 자존감으로만 버틸 수 없는 그 짧고 처절한 시간을 생각하니....
아렸다.
돈 맥클린의 기타 선율의 'Vincent'를 들으며 귀가하는 길.
벌써 흐드러지다 못해 바닥에 뒹구르는 목련 꽃잎들과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한 벚꽃의 불그스름이 점묘파의 기법처럼 점점이 보인다.
Now I understand
이제는 알 수 있어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내게 하려 했건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온전한 영혼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방법도 몰랐고요
Perhaps they listen now.
지금에서는 들으려 할지는 모르겠지만....
(출처: 돈 맥클린 Don Mclean - Vincen.. :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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