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 Harvard Art Museums의 뭉크전 관람기
보스턴에 온 지 나흘째이다.
여전히 시차적응에 실패한 좋지 않은 컨디션임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하루에 한 군데 정도는 다녀볼 생각이다.
집에서 2마일(3.2km) 정도에 Harvard Art Museums가 있다. 검색해 보니 7월 27일까지 뭉크의 <Technical Speaking> 전이 열리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미술관과 박물관을 꼭 찾는 나의 습성상 눈에 번뜩 뜨이는 정보였다. 더구나 청정부지 물가의 미국에서 'All day Free'의 짜릿한 유혹은 What the reason shoudn't I go there?(안 갈 이유가 뭐지?^^)이었다.
개관 시간인 10시에 호기롭게 입장하고자 했던 처음의 계획은 비가 오는 탓에 한 시간 늦춰졌지만 역시 그 탓에 인적이 드물어서 아주 운치 있었다.
VISITOR인 나는 안내데스크에 등록을 하고 전시회 장소인 Level 3가 3층이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무조건 올라갔는데... 촉이 맞았다.
솔직히 내가 알고 있는 뭉크에 대한 상식은 '절규' 하나뿐이었다.
그런 백지의 상태에서 이번 뭉크전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에드워드 뭉크는 회화와 판화에서 혁신적인 실험으로 유명했다. 동일한 소재라도 다른 색감과 좌우 변형등 다양한 실험으로 자기 복제를 통한 자신만의 독특한 실험적 탐구로 많은 작품을 양산해 냈다. 더구나 국제적인 판화 스튜디오 작가들과 네트워크를 통하여 협업하는 등 더 큰 사업으로 확장하여 생전에도 두 지역의 땅을 모두 살만큼 거부인 사업가였다.
처음으로 관객들을 맞이한 작품은 <Two human beings(The lonely ones); 두 사람(외로운 사람들)>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관람객들에게 등을 돌리고, 나란히 같이 서 있지만 서로 고립된 감정을 나타낸다. 공간적 정서적으로 근접성과 거리감 사이의 긴장감을 나타내는 이 작품은 작가가 자주 다루는 외로움을 소재로 한 것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1892년에 회화로 그리고 2년 뒤 에칭(동판화)으로 만들고, 1899년부터는 목판화 시리즈로 이어졌다고 한다. 반복적인 인쇄로 목판의 훼손이나 심하게 희석된 페인트로 인해 페인트 층의 흐름과 같은 의도하지 않은 예술적 과정이 잘 드러나서 그 자체로도 다양하고 풍부한 감흥을 준다.
같은 듯 다른 이 여섯 작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영어가 짧은 탓에 이 작품들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데에는 좀 시간이 걸렸다.
5번째 작품만이 회화이고 나머지 네 작품(1~4번)은 판화이다. 목판화와 동판화, 석판화까지 다양한 기법과 흑백과 컬러, 컬러의 다른 배치, 좌우 반전등 다양한 색감으로 하나의 주제를 저렇게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6번째는 바로 동판화의 원판이다.
이 작품들은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다루었던 <뱀파이어(Vampire)>로 1893~1895년경에 처음 그려진 것으로 석판화 작품이다. 처음에는 하나의 돌에 검은색으로 인쇄된 석판화로 시작하였는데 계속해서 조합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두 번째 석판에는 여성의 머리카락의 그림을 추가하는 등 점점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표현을 첨가하였고, 찍어내는 종이도 컬러나 재질에 따라 다른 느낌의 작품이 양산된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흡혈의 장면'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오히려 애정 어린 포옹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결국 다른 작품처럼 인간 내면의 깊숙한 불안과 외로움 상처와 집착등 복잡한 감정을 상징하고 있다.
이 석판화의 과정을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음과 같이 투명한 셀로판을 이용하여 설명해 준다.
<death in a sickroom; 병실에서의 죽음>이다.
첫 번째 사진은 석판화의 원본인 인쇄용 돌이다. 직접 돌에 그린 것이 아니고, 이미 그린 드로잉을 돌에 옮겼다고 한다. 항상 뭉크는 원본인 돌을 중시하여 자신의 아뜰리에에 보관하고 나중에 재인쇄하거나 여러 다른 방식으로 인쇄하였다. 다른 판화가들이 돌 값이 비싸서 판화용 돌을 깎아서 다른 작품을 또 그리는 재사용을 한 것에 비해 부자였던 뭉크는 판화용 원석을 그대로 보관하고 좋은 돌을 선점하기 위해 항상 예약하는 플렉스를 누렸다고 한다.
뭉크는 60년이 넘게 회화 1100점, 판화 15000점 등 토털 42000점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 대부분이 색채와 표면 질감에 대한 실험적 특징이 주가 되었다. 두꺼운 재질의 종이 위에 희석된 물감을 흘러내리게 했고 어떤 곳은 아예 텅 비워두기도 했다. 또 물감을 긁어내기도 하고 다시 덧칠하기도 하는 등 많은 실험적 방식을 통해 하나의 기본 아이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많은 작품들을 창조해 냈다. 왜 이 전시회 이름이 <Technical Speaking>인지 작품을 다 보고 나서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누구나 결과를 보면 대단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그 한 끗의 차이로 예술은 탄생한다. 뭉크의 판화의 세계는 그 한 끗을 캐치한 것이 뭉크의 성공을 보장하였다고 감히 단언한다. 판화는 대부분 시리얼넘버가 작품의 진위와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뭉크는 이렇게 한 끗 차이의 발상으로 새로운 작품을 무한대로 생성해 나가니 아주 첨단의 전문적 기술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소개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Inger in a Red Dress; 붉은 드레스를 입은 잉거>
생동감 넘치는 이 초상화는 뭉크의 막내 여동생이자 사진작가인 잉에르마리뭉크를 그린 것이다. 유화와 크레용을 사용하여 무처리된 판지에 그려진 작품으로, 잉거가 붉은 드레스를 입고 정면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어릴 때 어머니와 누나와 여동생의 죽음과 아버지의 광기로 아주 불운한 유년을 보낸 뭉크는 평생 자살충동과 불안 그리고 강박장애로 고생했고, 사랑에 대한 불신과 계속되는 실패로 독신으로 살았다. 오죽하면 뱀파이어 같은 괴이한 그림을 그렸을까? 아마 사랑에 대한 패닉이 엄청 컸을 것 같다. 그런 그에게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사람은 잉거가 아닐까 싶다. 더구나 같은 예술가로서 많은 교감을 이룰 수 있었을 테니까..
전시회의 모든 그림과 판화가 우울하고 괴기스러울 정도로 음습했지만 이 그림만은 참으로 밝은 정기와 따뜻함, 인간애까지 느껴졌다. 직관할 때의 붉은색의 원피스의 색감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한 빛이었다. 보스턴을 떠나기 전에 다시 꼭 들러서 한번 더 보고 싶을 정도로...
뭉크에 꽂혀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가 《Edvard Munch》라는 노르웨이에서 제작된 영화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귀국 후 꼭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