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3: <PorchFest2025>in Somerville
보스턴에 도착한 후 첫 주말을 맞이하였다.
금요일 저녁을 먹으면서 토요일 오후에 포치페스트를 다 같이 갈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축제라고 하였다. 듣기만 해도 벌써 좋았다.
한국에 있을 때 매년 청남대에서 열리는 재즈토닉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나는 이런 뮤직페스티벌을 사랑한다.
porch의 뜻이 '현관'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 페스티벌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한국사람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가 않았다. 어떻게 현관에서 페스티벌을 연다는 것인가?
결국 ChatGPT를 통해 약간의 정보를 얻었다.
<PorchFest2025 in Somerville; 섬머빌 포치페스트>는 지역 음악가들이 도시 전역의 베란다, 차도 및 정원에서 공연하는 연례행사로써 Open Streets 개념을 도입하여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그 공간을 사람들이 훨씬 더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주민들의 자치기구를 통해 만들어진 특색 있는 음악 축제로 섬머빌 예술 위원회가 주최하며, 이 행사는 지역 사회 정신과 음악적 다양성을 기념합니다.
� 섬머빌 포치페스트 2025 �
안내날짜: 2025년 5월 10일 토요일 오후 12시 – 오후 6시(우천시 2025년 5월 11일 일요일)
입장료: 무료
장소: 매사추세츠주 섬머빌 전역웹사이트 PorchFest – Somerville Arts Council
토요일 아침부터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나 여기 사람들 얘기로는 이 정도 비는 얼마든지 축제 개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다들 나갈 채비를 서둘렸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에일, 필스너, 라거, IPA 등 마실 맥주캔을 백팩에 챙기고 길을 나섰다.
공연 순서는 도시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일단 홈페이지의 공연 지도를 다운받아서 서쪽의 첫 공연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음악소리를 따라 도착한 첫 공연장. 집과 집 사이의 공터에서 하는데 수준이 꽤 높다.
왼쪽 사진은 바로 공연장이라는 표식이다. PORCH의 느낌을 잘 살려서 아주 특색 있게 잘 표현하였고, 컨트리풍의 노래가 아주 흥겹고 편안한 아저씨밴드였다. 본인들의 공연이 첫 시작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확인하고는 아주 자부심이 높은 제스처를 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가는 길에 보니 저렇게 어설프게 레모레이드를 파는 귀여운 장사꾼(?)들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감성 가득한 전봇대에 홍보전단도 직접 그려서 붙여놓은 것도 너무 재밌고 사랑스럽다. 외국 아이들 사진은 절대 함부로 찍어서는 안 된다는 아들의 신신당부를 기억해서 저 꼬마사장님들께 허락받고 찍었다.
두 번째 공연장은 정말 이름에 딱 맞는 현관에서 하는 공연이었다. 색소폰과 더블베이스까지 동원하여 음색이 훨씬 풍부하고 흥겨웠다. 아직 시작단계라 그런지 사람들이 슬슬 모이기 시작했고 자유롭게 몸을 흔드는 젊은이들이 참 발랄하고 활기차 보였다. 캠핑용 의자로 앉아 공연을 즐기는 다섯 살 남짓의 남매가 너무 귀여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쳐다봤다.
명실상부 Rock&Roll의 현장~!
젊은이들이 꽤 많았고, 다들 맥주병을 한 손에 들고 열심히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슬슬 술기운이 올라오던 나도 동참하여 열심히 해드뱅잉을 하였는데, 같이 간 아들 친구들이 엄청 웃었다고 한다.
어떤 공연장은 뒷마당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한 집이라고 하기엔 출입구도 꽤 되었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여기서는 아파트를 콘도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이 집이 바로 그 콘도였다.
우리나라의 아파트처럼 여기 콘도도 젊은 부부가 많다 보니 아이들이 꽤 많았다.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 같은 인상의 가수의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가장 시끌벅적하고 사람이 많아서 가보니 아주 흥겨운 무대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백미는 알토색소폰이었다. 소프라노색소폰과 알토색소폰 두 개를 동시에 입에 물고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자 관객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순간 포착을 못해서 사진을 못 찍은 게 아쉽다.)
알토색소폰 연주자가 무대에게 내려와 관객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힐 정도로 열심히 연주를 하여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즐기다 보니 피곤감에 지쳤지만, 표시를 낼 수는 없었다. 나 때문에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았고 그럭저럭 버틸 만도 했다. 다행히 젊은이들이 먼저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줘서 내심 호재를 불렀다.
돌아와서 애들이 수다를 떠는 동안 난 조용히 이층으로 올라와 잠시 눈을 붙였고, 30분쯤 쉬고 내려가 보니 다들 거실에서 너부러져 자고 있었다.
늬들도 많이 피곤했구나....
음악과 술의 힘으로 버텼던 흥이 뒤늦게 밀려온 피곤감에 항복하고 있는 모습들이 귀여웠다.
사실 2월 말 명퇴를 하고 자유인이 되었지만 윤씨 덕택(?)에 매일이 멀다 하고 시내에서 열리는 퇴진집회에 참석하면서 3월 한 달을 보냈고, 4월에도 맘이 편하지 않은 날들이 지속되었다. 출국하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내란세력들의 봉기를 보면서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며 살았는데.... 오랜만에 누려보는 자유였고 호사였다.
향락과 마약이 남무 하는 미국이라지만, 내가 본 포치페스트는 소박하고 너무 생활밀착형으로 소확행이 생각나게 하였다. 우리에게도 이런 소박한 지역문화들이 좀 더 많이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지역문화라고 가보면 다 먹자판 위주이고 바가지요금에 주차난까지... 기분 좋게 돌아오기가 쉽지 않은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역 축제는 시민 모두가 참여하고 낮은 예산을 후원과 자원봉사자를 통해 극복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지역 행사는 대부분 외부의 전문업체에 맡기고 소수의 출연진, 즉 유명가수들을 비싼 출연료로 섭외하는데 예산을 집중하다 보니 너무 관람형으로만 치우치는 보여주기식이 아닐까 싶다.
제일 짜증 나는 것 중 하나가 꼭 단체장 소개하고 한 마디씩 하는 게 우리나라의 필수코스인데 비해 포치페스트에는 전혀 그런 것이 없다. (물론 내가 모든 미국의 지역축제를 보지도 않은 상태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도 불분명하여 그냥 지 팔 흔들고 싶은 만큼만 흔들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문화도 점점 개인의 개성과 선택에 집중되고 있으니 소규모로 다양성과 지속성을 가진 생활형 지역문화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