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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oston 4. MIT에는 바나나산이 있다?

여행 5: MIT대학을 둘러보다.

by 게을러영

Visitor인데 Resident처럼 지내요.(4)

드디어 MIT!

한국 사람이라면 미국 동부를 여행할 때 하버드와 MIT를 필수 코스로 넣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학구열이 높은 한국인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또한 이곳 기념품점에서 하버드나 MIT 로고가 박힌 티셔츠, 혹은 열쇠고리 하나쯤은 꼭 사 간다는 이들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말도 들었다. 뭐 그 이상의 왈가왈부는 조금 깊을 수도 있으니 여기서는 살짝 접어두기로 한다.


나에게도 MIT는 특별하다.

작은 아이가 여기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직장까지 보스턴에서 잡아서 아들은 여기서 계속 살고 있다.

내가 요번에 보스턴에 온 이유 중에 하나도 5월 말에 개최되는 아들의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원래 계획은 Sailing이었다.

아들의 베프인 J가 대학 때부터 클럽활동을 한 MIT Sailing Pavilion에서 요트를 태워준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하늘이 너무나 파란 이쁜 날이었는데, 그리고 가는 동안 창문을 완전히 내려서 시원한 바람을 흠뻑 음미하였는데, 그 시원한 바람이 30분 뒤에 결국 나의 앞길을 막을 줄은 전혀 몰랐다.

아뿔싸~! 바람이 너무 거세 돛이 펼쳐지지가 않아서 요트를 띄울 수 없었다.

아쉬움에, 이왕 입은 안전조끼와 헬멧을 벗기 전에 정박한 배에 올라타서 설정샷을 찍어달라는 내 요청에 다들 웃었다.


J는 나를 Umma라고 불렀다. 몇 번씩 엄마라고 가르쳐줘도 갸는 계속 음마이다. 뭐... 어쩔..

그는 불발에 대한 미안함으로 계속 "Umma, Sorry~ 어쩌고 저쩌고~~"

마침 일찍 퇴근을 한 아들이 합류해서 전후 사정을 들려주었고, 나는 흔쾌히 다음을 기약했다.

대신 찰스강 바로 앞에 위치한 MIT를 둘러보는 게 어떠냐는 제의에 나는 무조건 오케이로 응수했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닭 대신 봉황인 셈이다.

내가 그렇게도 가 보고 싶었던 MIT의 첫 방문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2019년 여름에 아들은 한국을 떠났다.

멀쩡해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하필 코로나 시기와 겹쳐서 아이는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걸린다는 향수병이 그 시기에 왔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괜찮다.. 괜찮다.. 힘들면 돌아와라.' 이 말 뿐이었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당시는 재직 중이었기에 학기 중에 외국에 가는 일은 요원한 것이었다. 아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사실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 널뛰는 감정을 그대로 보였으면 차라리 편했을 텐데... 워낙 신중한 아이라 말을 하지 않으니 걱정과 무력감이 뒤섞여 나 역시 불면의 밤을 보낸 적이 꽤 되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잘 이겨냈고 본인 말로는 그 힘든 시절 하나님을 알게 되어 가능했다고 했다. 가톨릭신자인 나는 나의 하느님이 아닌 크리스천인 아들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바닥까지 가 본 경험을 한 아들은 그 뒤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넓어지고 부드러워졌다. 새옹지마의 이치를 깨닫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렇게 일상처럼 대할 줄 아는 여유와 삶의 지혜를 지니게 되었다. 그런 아들의 성장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고맙고 뜻깊은 선물이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MIT 출신들을 기념하는 MIT 박물관을 찾았고, 아들이 공부하던 랩실이 있는 건물도 둘러보았다. 도서관에도 들렀는데, 그곳에는 재미있게도 아주 편안한 의자들이 자유롭게 놓여 있어 나도 학생들처럼 그 위에 누워보기도 했다.

책을 읽거나 노트북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참 인상 깊었다. 그런 풍경 속에서 한때 아들도 저 자리에 앉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런데 압권의 장소는 따로 있었다.

바로 Banana Lounge(바나나룸)이었다.

J가 바나나룸을 가보자고 했을 때만 해도 룸의 형태가 바나나 모양인가 했다. 아들도 J도 내 물음에 가보면 안다고만 하면서 웃기만 했다.

막상 도착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바나나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MIT 학생들을 위한 자율 휴식 공간으로써 바나나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이란다. 바나나를 맘대로 먹을 수 있고 가져갈 수도 있었다. 멀쩡한 바나나가 버려져 있기도 했다. 나도 잘려나간 바나나 한 개를 집었다. 끝부분이 좀 검어졌지만 충분히 먹을 만했다. 아주 달콤했다.

MIT 바나나가 특히 더 맛있다는 나의 농담에 J는 크게 웃었다.


왜 하필 바나나일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깎거나 씻지 않아도 되는 과일이라 손쉽게 먹을 수 있고, 빠르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으며 또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학생들을 위한 배려는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 말로는 이미 MIT의 전통이 되었고 휴게시설로 아주 훌륭할 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라고 했다.




아들은 볼 일이 있어 다른 곳으로 가고 라이드를 해줬던 J의 차를 타고 돌아오던 귀갓길,

J는 나에게 MIT를 둘러본 소감을 물었다.

사실 아들이 힘들 때 가장 옆에서 묵묵히 도와준 친구가 J였기에 난 한국에서부터 J에 대한 고마움을 영어로 표현하고 싶어서 몇 번씩 연습하고 외웠다.


"나는 진즉부터 여기를 오고 싶었어. 그러나 사정이 녹록지 않았지...

너도 알다시피 MIT는 00의 인생이 녹아있는 곳이야. 그의 기쁨, 성취뿐만 아니라 괴로움과 아픔까지.. 그 모든 일상에 00의 베프인 J가 함께 해줬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의 서툰 영어 실력과 어눌한 발음으로 J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신호 대기 중에 조용히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저무는 햇살에 얼굴을 살짝 물들인 채 나를 바라보며 지은 J의 미소는 너무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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