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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oston 5. 하버드에는 유리꽃이 있다.

여행 6: HMSC(하버드 자연사박물관) 탐방기

by 게을러영

Visitor인데 Resident처럼 지내요.(5)


처음으로 혼자서 버스를 타고 나가봤다. 시리즈 제목처럼 비록 방문객이지만 거의 거주자처럼 살고 있는데 그 명분에 걸맞게 버스랑 지하철 정도는 혼자서 타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일반 신용카드도 웬만한 지하철과 버스는 탈 수 있지만, 안 되는 구간이 있다는 것과 무료 환승의 혜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그 모든 것이 해결되는 찰리카드를 구매했다. 보스턴에서만 적용되는 모든 트레일패스이다.(물론 페리는 제외다.) 일단 20달러를 충전했다.

보스턴의 시내버스는 우리나라의 버스와 별 다름이 없었으나 꽤 쾌적했다. 단지 우리는 하차 시 카드를 단말기에 한번 더 태그를 해야만 무료 환승의 혜택을 누리지만, 여기는 하차 시 그냥 내리고 환승하는 경우 승차할 때 태그하면 된다. 무료 환승 시간은 2시간으로 아주 넉넉한 인심이다.





하버드자연사박물관은 너무나 유명하기에 굳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영화를 봤을 때 낮에는 조용했던 박물관의 공룡과 야생동물 박제가 밤이 되면 살아 움직이는 그 느낌을 그대로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의 박제는 너무나 많을 뿐만 아니라 정교하고 다양했다.


대부분은 알고 있는 동물들인데 , 오카피 (Okapi, 첫 번째 사진)란 동물은 처음 보았다. 남아프리카가 서식지인데 특히 콩고의 열대우림지역에 많다고 한다. 생김은 얼룩말처럼 보이지만 기린과로써 긴 혀로 (최대 35cm) 나뭇잎과 열매를 따먹는 데 사용하고, 성격은 온순하고 야행성이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온갖 다양한 종류의 딱정벌레(세 번째 사진)이다. 딱정벌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동물군으로써 35만 종에 달한다고 한다. 딱정벌레는 2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하였는데 초식성을 가진 종도 있고 육식성을 가진 종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심지어 균류를 먹는 종도 있다고 한다. 하나의 종이 사라져도 다른 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들의 유연성과 광범위한 생존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출처; 네이버

자연사박물관을 가기 전에 사전 조사를 좀 했는데 유리꽃이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당연히 유리공예로 만든 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진의 꽃처럼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의 상상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게 하버드자연사박물관의 유리꽃의 클래스이다. (최대한 현장에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축소하지 않고 원본을 그대로 올린다.)

완전 다른 차원이다. 이건 그냥 보테니컬아트의 입체 버전이다.

이것이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누가 한 번에 인식하겠는가? 그 세밀함과 섬세으로 인해 유리재질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드라이플라워인데 어쩜 저렇게 색이 생생할까? 정말 잘 말렸네.’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서야 그것이 유리로 만든 꽃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자꾸 잊게 만들 만큼 식물들은 모두 정교하고 아름답고 살아있었다.


그럼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식물을 제작한 작가는 과연 누구이고 왜 제작하게 되었는가?

유리꽃은 전부 유리로 만들어진 게 맞고, 종종 내부에 철사를 보강했다고 한다. 이 유리꽃은 1886년부터 1936년까지 약 50년 동안 자연주의자이자 유리 장인인 레오폴드 블라슈카(2번째 사진)와 그의 아들인 루돌프 블라슈카(3번째 사진)가 약 4400개의 모델을 만들었다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유리를 열로 녹여서 각 부분을 형상화했고 유색 유리나 필요한 색을 금속산화물을 엷게 발라 가열해서 만들었는데 독일 드레스덴 근처의 Blaschkas공방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1번째 사진)

만들게 된 경위는 하버드 식물 박물관 설립자인 조지링컨 굿데일 교수식물학 교육을 위해 실물 크기의 식물 표본을 원했고, 저 두 장인의 손에서 마침내 완성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레오폴드 블라슈카는 안구를 유리로 제작하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5번째 사진)

끈기와 오타쿠 기질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는 꼭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되었다.


한 번만 보고 나가기엔 아쉬움이 커서 퇴장하기 전 눈과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자 다시 한번 더 관람했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겠지만, 유리꽃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경이로움과 충격은 오래도록 내 안에 선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입장할 때는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해, 퇴장하고 나와서 뒤늦게 한 장 남겼다. 입구와 출구는 전혀 다른 방향에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사박물관으로 입장하면 퇴장은 고고인류학 박물관으로 나오는 시스템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하버드 자연사박물관의 입장료 15달러에는 피바디 고고인류학 박물관(Peabody Museum of Archaeology and Ethnology) 관람도 포함되어 있다.

'피바디(Peabody)'라는 이름이 궁금해 찾아보니 사람 이름이었고, 그는 19세기 자선가로서 그의 후원으로 설립된 박물관이기에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외국 대학의 건물이나 기관들이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그런 흐름이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기부와 자선은 충분히 존중받고 칭송받아야 할 가치임에 틀림없다.

다리가 뻐근한 걸 보니 오늘도 많이 걸었다.

그 뻐근함은 묵직한 감동으로 상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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