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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oston 6. 뚜벅이는 팔자이다.

여행 7: 서머빌 주변을 돌아다니며

by 게을러영

Visitor인데 Resident처럼 지내요.(6)


한국에서도 난 참 많이 걸어 다녔다.

오죽하면 주변에서 전생에 못 걸었던 한이 있는 사람이 환생한 건 아니냐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도 매일 걷는다.

한국에서는 운동을 위한 방편으로 걷지만, 미국에서는 잘 보기 위해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니 하루에 만보이상은 기본이다.




뚜벅이는 아주 큰 장점이 있다.

차로 가면 못 볼 것들을 언제나 어디서든 그 자리에서 바로 볼 수 있다. 어떤 것이라도 멈춰서 찍고 살펴볼 수 있다. 호기심천국인 내게는 참 안성맞춤인 취미이자 건강법이다.

더구나 타국에서의 모든 것은 다 새롭고 궁금하다. 하다못해 길을 걷다 보면 기념비들과 동상들이 종종 보이고 그럼 멈춰서 살펴본다.


며칠 전 North End 쪽으로 걷다 보니 권투 선수동상(왼쪽)이 있었는데 딱 봐도 동양인 같아서 궁금했다. 찾아보니, 토미데마르코(Tomy Demarco)는 세계 웰터급 챔피언으로 보스턴의 북쪽 끝인 Fleet ST에서 태어났고 그의 경기는 세계 10대 명경기로 손꼽힌다고 쓰여 있었다.

어제 지역 페스티벌로 가는 길에 발견한 이 기념비(오른쪽)는 미군스퀘어서비스클럽이 건립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참전한 소머빌 지역출신 35명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아무래도 외국에 있다 보니 항상 외출 시 구글맵을 켜고 다니게 되는데, 며칠 전 멀지 않은 곳에 '버락오마마 로즈가든(Barack Obama's Rose Garden)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우리가 아는 그 오바마?

너무나 반가워서 당장 그곳으로 향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오사마빈라덴을 법정에 세우고 정직과 지성의 상징인 미국의 44대 대통령 오바마가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할 때 거주했던 집으로 1B호에 살았다고 한다.(왼쪽)'

붉은색 벽돌로 지은 지하를 포함한 4층 건물로 우리로 치면 아파트 같은 곳이었다.(오른쪽)


자그만 꽃밭에 장미가 몇 송이 피어 있었는데 그것이 로즈가든 명명의 이유인가 보다.

사실 우리가 아는 로즈가든은 백악관 서쪽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시절 그곳에서 중요한 의제를 발표하거나 국민과 소통하는 상징적인 무대로 많이 활용했던 곳으로 정치적·역사적 순간들을 상기시키는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그 로즈가든의 아류(?) 정도에 해당될까? 아님 로즈가든 하면 오바마가 생각나니까 연관하여 명명했을까?




그다음은 이름도 너무 이쁜 '블레싱 오브 더베이공원(Blessing of the Bay Park)'이다. 이름만으로도 충만함과 사랑이 느껴지는데 혹 다른 의미는 없을까 찾아보니, Blessing of the Bay는 1631년 매사추세츠주 소머빌(Somerville) 지역에서 건조된 미국 최초의 상업용 범선 중 하나의 이름이고, 이 배는 초기 식민지 시대에 건조되어, 매사추세츠만(Massachusetts Bay)과 주변 식민지 간의 무역과 교류 및 탐사를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초기 청교도 개척자들의 신앙심과 항해의 안전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어서 강이나 베이 주변의 공원 이름으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이 공원이 미스틱강(Mystic River)에 위치하였으니 두 가지의 뜻이 모두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원입구에 아트스트와 학생들의 협업으로 벽화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아주 재밌고 훌륭한 그림들이 많았다.(첫 번째와 두 번째 사진)

이곳은 특히 일몰이 아름답고 베이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조깅하는 사람들과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위가족도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다. 어제 본 거위가족들은 아주 대가족이었다.




자 이제 뚜벅이의 두 번째 장점을 말하면, '생각을 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사유는 내가 미국에 와서 훨씬 더 많이 웃고 많이 친절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스쳤다.

말이 잘 안 통하는 불편함과 오해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 두 가지 덕목은 필수이다.

또한 상대에 대한 고마움도 아주 강하게 자주 느낀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천천히 영어로 말하거나 내 질문에 성의껏 대답해 주면 그 사람은 바로 내게 천사이다.

하다못해 슈퍼의 캐시가 날 보고 "니하오!" 하길래 'I'm not chinese but Korean.'이라고 하니까 바로 '안뇽하세요?' 하며 방긋 웃길래 나도 얼른 '한국어 참 잘한다.'는 칭찬을 해줬다.

이렇게 미소와 스몰토크가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세 번째 장점은 낮에 햇빛을 받고 많이 돌아다니며 멜라토닌을 많이 생성해서 그런지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육십에 접어든 내게 숙면은 그 어느 것보다 최고의 보약이다. 매일 수면 점수와 에너지 점수가 80점 이상이 되어, 아침에 기상했을 때 완충된 배터리처럼 짱짱함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건강은 절대 자신할 수 없다.

그냥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꾸준히 섭생과 운동으로 유지를 잘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나는 항상 부모님을 보면서 느낀다. 팔십이 넘고 나서 두 분은 눈에 띄게 약해지셨다. 구순에 가까운 아버지의 노쇠함은 하루가 다르게 나타난다.

내게 남은 기간은 이렇게 지금처럼 잘 관리한다고 해도 최대 20년이라는 것을...

그건 단지 남의 도움 없이 일상의 활동이 가능한 시간만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15시간에 달하는 비행과 11시간의 시차를 극복할 수 있는 육체적 건강과 스스로 탐색하고 여행할 수 있는 영민함까지 생각하면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10년도 채 안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미국에서 체류하는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값지다.

내 일생에 다시 못 올 기회라는 것도 안다.

이런 자각은 근육운동과 걷기를 오늘도 수행하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월든호수에서 걷다가 너무 힘들어서 평소 안 하던 짓을 해봤다. 저렇게 누워보니 너무 이쁜 파란 하늘이 그냥 내게 쏟아졌다 (왼쪽) / 빠른 검색으로 찾은 이스트보스턴항. 페리를 타기까지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하선 후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러운 한 컷~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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