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oston11. 시행착오를 넘고 페리위에서

여행12: 보스턴 Long Wharf에서의 단돈 2.4불짜리 페리승선기

by 게을러영

겨우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모녀와 다정한 눈인사를 하였다.

엄마가 내게 왜 이 배를 타냐고 물어서 그냥 관광용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보스턴에 사는 딸네 집에 왔다가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배가 서서히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줄 앞에 서있는 직원처럼 보이는 분께 '승선표 없이 신용카드로 탈 수 있는가?'를 물었고 그는 신용카드, 현금 모두 안되고 오로지 앱으로 예매한 경우만 가능하다고 했다.

또 한 번의 멘붕이 왔다.

그분은 친절하게 자신의 폰을 꺼내서 M-Ticket 앱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분의 조력으로 바로 깔았다. 다행히 나의 신용카드 정보까지 기입할 때까지 배는 출발하지 않았고, 전모를 보면서 나와 함께 마음을 졸였던 그 모녀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그렇게 힘들게 탄 페리는 원래 가려고 했던 무료 페리보다는 작았지만 내게는 타이타닉이상 이었다. 갑판에 올라가서 셀카봉을 세우고 연실 인증샷을 찍어댔다.

‘겨우 승선’이었지만 ‘마침내 승전’처럼 당당하게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십 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하선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Visitor인데 Resident처럼 지내요.(10)


뉴욕으로 출장 간 아들한테 톡이 왔는데 친구와 같이 페리를 탄 사진을 보내왔다. 친구가 검색해서 알아낸 맨해튼에서 스타튼 섬까지 가는 공짜 페리가 있어서 탔다고 한다.

역시 세상은 검색의 힘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뉴욕에도 있다면 혹시 보스턴에도 있지 않을까?


쳇지피티에 '보스턴 무료 페리 정보'라고 물어보니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해 줬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다음의 정보였다.


�️ 1. 무료 페리 이벤트: 보스턴 하버 아일랜드 오프닝 주말
2025년 5월 17일(토)과 18일(일)에는 보스턴 하버 아일랜드 국립 및 주립공원의 시즌 개장을 기념하여, 롱 와프 노스(Long Wharf North)에서 스펙터클 아일랜드(Spectacle Island)로 향하는 무료 페리 서비스가 운영됩니다.
Boston Harbor Islands+3bostoncentral.com +3Boston.com+3

출발 장소: 롱 와프 노스, 보스턴
출발 시간: 오전 10:30 및 오후 12:30
티켓 배부: 매일 오전 8시부터 선착순으로 배부되며, 성인은 최대 5장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이벤트는 매년 개최되며, 올해도 진행 중입니다.


이 검색을 할 때가 18일(일) 아침 8시 반쯤이었고, 8시부터 표 배부라 거의 가능성이 없기에 도전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기상해서 일층으로 내려온 아들 베프인 A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그의 대답은 아주 명쾌했다.

"블라블라, why not?~블라블라~~"

솔직히 말하면 나도 도전할 맘이 있었는데 그의 권유가 기폭제가 되었다.

안 되면 롱와프항구를 구경하면 되고, 운이 좋아서 타면 더 좋고.

인생은 항상 벽이라 느낄 때 밀어보면 문인 경우가 많으니까!


한국이었으면 귀차니즘과 백만 가지의 이유로 시도도 안 해봤을 텐데, 외국이라 뭐든 새로운 경험이니까 해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다행히 롱와프노스(Long Wharf North)까지는 한 번에 가는 지하철이 있어서 발 빠르게 갈 수 있었으나 도착했을 때 이미 9시 40분이었고, 혹시나 하는 맘에 매표소로 달려가 물어보니 매표원이 'Sold out'이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No pain, No gain! (노력 없이는 얻는 것이 없다.)

세상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다. 모두가 원하는 건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 얻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먼저 먹는 건 공정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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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실망감만 느끼기엔 날씨와 항구는 너무 이뻤다. 롱와프 항구를 한번 쭉 둘러보고 혹시나 싶어 매표구에 가서 살펴보니, 이스트보스턴까지 10여분 정도 걸리고 요금은 단지 2.4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오늘의 내 목표는 승선이니 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티켓을 원한다.'는 나의 말에 매표소 직원은 Pier 5로 가라고만 했다. 거기서 배를 타면 된다고 했다. 나는 내 비자카드를 보이면서 이것으로 바로 탈 수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YES!'로 크게 화답했다. (그러나 그녀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 준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묻는 내 질문이 귀찮아서 그랬는지 진짜 몰라서 그렇게 답했는지는 그녀만 알겠지만...)




KakaoTalk_20250521_040724278_04.jpg 무료 페리를 승선하기 위한 대기하는 긴 줄의 모습

Pier 1에서 Pier 4까지는 같은 방향에 위치했지만 Pier 5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을 끼고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뒤편에 가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이 펼쳐져 있었고 거기가 바로 Pier 5였다.


설마 이스트보스턴 가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처럼 공짜 페리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꿩 대신 닭'으로 택했을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줄 맨 끝에 서 있는 여자한테 물어보니 무료 페리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혹시나 해서 서 있는 줄이라고 했다. 좀 문화적 충격이 왔다. 만약 인터넷 예매였다면 노쇼가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장소까지 와서 최소 2시간 이상 줄을 서서 획득한 표를 누가 포기할까?

그러나 그건 개인의 선택이니까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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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스트보스턴 가는 배는 어디서 기다려야 하는지 알아보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걸스카웃 복장을 한 이쁜 여자분이 먼저 다가와서 '뭘 좀 도와줄까요?'라고 아는 체를 해 주었다.

나의 질문을 들은 그녀는 이스트보스턴 가는 배는 작은 배니까 여기가 아니고 저쪽이라고 하면서 가리킨 방향은 족히 10분은 더 걸어가야 하는 반대편의 먼 거리였다.

결국 나는 그녀의 조언대로 거기까지 걸어갔고, 막상 가보니 거기는 개인의 배가 정박하는 장소인 거 같았다. 사람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다 명찰을 단 분께 물어봤더니 다시 원래의 방향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아... 힘이 풀렸다.

그러나 아직은 오전이다.

아침에 빵빵하게 채운 배터리의 잔량이 꽤 된다.

이건 스마트폰 얘기가 아니다.

내 체력 얘기이다.


다시 Cheer up 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 보니 스펙터클 아일랜드(Spectacle Island)행 무료 페리는 이미 출발한 후라 항구는 한산했다. 그 많던 사람들이 정말 탔는지 아니면 여석이 없어서 돌아갔는지는 그 순간에 없었기에 모르겠다.

그리고 아까는 안 보였던 '이스트보스턴'의 명패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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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보스턴 페리의 갑판에서

겨우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모녀와 다정한 눈인사를 하였다.

엄마가 내게 왜 이 배를 타냐고 물어서 그냥 관광용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보스턴에 사는 딸네 집에 왔다가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배가 서서히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줄 앞에 서있는 직원처럼 보이는 분께 '승선표 없이 신용카드로 탈 수 있는가?'를 물었고 그는 신용카드, 현금 모두 안되고 오로지 앱으로 예매한 경우만 가능하다고 했다.

또 한 번의 멘붕이 왔다.

그분은 친절하게 자신의 폰을 꺼내서 M-Ticket 앱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분의 조력으로 바로 깔았다. 다행히 나의 신용카드 정보까지 기입할 때까지 배는 출발하지 않았고, 전모를 보면서 나와 함께 마음을 졸였던 그 모녀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그렇게 힘들게 탄 페리는 원래 가려고 했던 무료 페리보다는 작았지만 내게는 타이타닉이상 이었다. 갑판에 올라가서 셀카봉을 세우고 연실 인증샷을 찍어댔다.

겨우 승선이었지만 마침내 승전처럼 당당하게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십 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하선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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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보스턴항에서 본 보스턴 시내 모습(왼쪽) / 보스턴설탕정제소가 있었다는 안내판(오른쪽)

결국 ‘탔소 내렸소’를 순식간에 경험하고 하선한 이스트보스턴항구는 바람이 너무 거셌다. 조깅하는 사람 몇 명만 보일 뿐, 우리가 생각하는 항만의 북적거림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 롱와프노스항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걷다 보니 보스턴에 최초로 설립된 산업체인 '보스턴 설탕 정제소'가 있었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오른쪽)

<1850년대 세워진 '보스턴 설탕 정제소'는 보스턴 최초의 산업이었고 그 규모가 어마하게 커서 미국 전체 설탕 정제 산업의 98%를 차지할 만큼 번성하였는데 시내의 다른 정제소와 통합한 후 이곳은 폐쇄되고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1, 2차 산업의 전성기도 이제는 빛바랜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게 역사속으로 사라졌음이 이제 장년기를 벗어나는 내 인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귀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구글지도 앱을 열고 나서야 왜 이 항구가 일요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산한지 알 수 있었다. 승선했던 롱와프항구와 하선한 동보스턴항구는 지하철 역으로 겨우 한 정거장 차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는 나처럼 여행자들이 아니면 굳이 배를 탈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편한 지하철을 두고 누가 일부러 배를 타겠는가? 평범한 지하철 한 정거장의 이동을 나는 이렇게 스펙터클하게 했다. 그 고생도 모험도 내가 기꺼이 원한 것이기에 즐겁고 만족스러웠다.

'달걀이 깨지면 프라이지만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이듯 나는 타국에서 경험을 빙자한 일탈과 모험을 즐겼다.

나의 'No pain, No gain! '은 이렇게 완수되었고, 외국이라 가능했던 무모한 도전기는 이렇게 마친다.



#미국여행 #보스턴 #롱와프항구 #페리 #환갑 #모험 #무모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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