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8: 아프리카 예술, MFA Boston-2
고흐전에 이어 아프리카 예술 파트의 전시물들을 감상하였다.
아프리카의 예술을 단 한 곳의 박물관에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무모한 욕심일지 모른다.
미국, 중국, 유럽을 모두 합쳐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땅, 12억이 넘는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역사와 삶을 품은 대륙, 그곳이 바로 아프리카이다.
광활함과 깊이를 몇 점의 전시품으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은 전시실 안에는, 아프리카가 걸어온 지난 시간의 조각들이 정성스럽게 놓여 있다.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조각과 직물들, 그 중 상당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유럽의 식민지배가 이 땅을 짓눌렀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억압과 상처가 고스란히 밴 이 물건들은, 그러나 동시에, 그 혹독한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창조와 생명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 시대의 예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왕과 지도자의 위엄을 기리기 위해, 가족을 떠나보내는 장례의 자리에서, 공동체의 신화를 되새기는 축제 속에서, 삶의 모든 순간에 예술은 숨쉬었다.
크고 당당한 조각상은 권위와 책임을 새겼고, 작은 조각들은 사랑과 이별, 기억을 담아냈다.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인 가면들은 아주 흥미롭다.
이 가면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조상을 기리고, 어린 이들의 성장을 축복하며, 때로는 권력과 시대를 은밀히 비틀고 비판하는, 말 없는 저항과도 같았다.
어떤 가면들은 유럽인들의 눈을 의식하며, 낯선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 시대 예술가들의 생존력과 지혜를 엿보게 한다.
물론, 이 작품들 대부분은 원래 박물관의 차가운 전시장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유리 진열장 너머로 그들의 숨결을 느낀다.
시간을 넘어, 바다를 건너, 상처와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은 이 작은 조각들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아프리카 예술이 지닌 찬란한 아름다움과 치열한 생명력을 마주한다.
1번째 작품: 여성상, 바밀레케족, 카메룬, 19C후반~20C초 / 카메룬 초원의 왕국 중 하나에서 온 이 조각상은 언뜻 보면 임신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상징하는 것은 새로운 생명 그 자체라기보다, 왕족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위엄과 정체성이다. 정교한 발찌가 그녀가 속한 신분을 말해주고, 턱을 괴고 있는 손동작은 왕 앞에서의 말을 조심하겠다는 신중함이자 복종의 몸짓이다. 목재 위에 새겨진 이 작은 제스처 하나에도 이 땅의 권력과 질서가 스며 있다.
2번째 작품: 묘비꼭대기에 있는 상징(알로알로), 19C후반~20C초 / 마다가스카르의 대지는 단순한 섬이 아니다. 아프리카, 인도, 인도네시아, 아랍의 혈통이 뒤섞인 이곳은 그 혼합만큼이나 다채로운 예술이 자란다.
'알로알로'라 불리는 이 조각은 가족 묘지를 지키는 상징이다. 죽음을 드리운 그림자 위에 세워진 이 조형물은 어쩌면, 끝이 아닌 시작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새겨진 전통과 기호는 한 사람의 죽음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3번째 작품: 파워 피규어, 송에족, 콩고민주공화국, 19C후반~20C초 / 콩고의 송에족이 남긴 이 웅장한 파워 피규어 앞에 서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금속과 구슬, 가죽으로 장식된 그 몸집은 단순한 조각을 넘어선다. 그가 손에 든 공이와 같은 도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마을과 공동체를 지켜온 상징이다.
이 피규어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고,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 속에서 주기적으로 새롭게 봉헌되었다. 그 자체로 이 땅의 불안과 희망을 품은 형상이다.
4번째 작품: 그릇을 나르는 사람(음보코), 루바족, 콩고민주공화국, 20C초 / 콩고민주공화국 곳곳을 여행하듯 발견되는 이 조각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첫 아이를 낳은 여성의 집 앞에 놓이며, 때론 점술에 사용되었던 '음보코'는 생명과 예언의 상징이다. 십자형의 머리 모양, 몸에 새겨진 다이아몬드 흉터, 분리 가능한 뚜껑에 반복된 얼굴은 우연이 아니다. 그 모든 디테일에 루바족 사람들의 신념과 미의식이 녹아 있다.
5번째 작품: 지팡이(오세샹고), 나무 / 도끼를 이고, 아이를 업은 여성의 모습이 조각된 이 지팡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녀의 머리 위 양손 도끼는 나이지리아의 오세샹고 신을 상징하고, 그 육체적 곡선과 관능미, 그리고 업힌 아이의 모습은 삶과 신성, 그리고 여성의 다층적인 의미를 한데 담는다. 이 지팡이는 과거 이그보미나-오로 지역의 아그베 가문을 대표했던 상징물로, 단순히 들고 다니는 지팡이 이상의 권위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
6번째 작품: 보석함, 망배투 왕국, 콩고민주공화국, 나무, 나무껍질, 식물성 섬유, 1890년대 / 둥근 두 다리 위에 자리한 이 보석함은 마치 작은 조각품처럼 정교하다. 과거 망베투 왕국의 부유한 여성들이 소중히 간직하던 장신구와 머리핀이 이 안에 숨겨졌다. 1890년대, 선박 목수였던 구스타프 울라우프의 손에 들어가 항해와 인맥을 따라 이국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이 나무껍질 상자는 단순한 골동품을 넘어, 여전히 그 고유의 매력과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그 표면을 따라 흐르는 시간의 결은, 그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 더 깊은 아름다움을 전한다.
1번째 작품: 헬멧마스크(소웨이), 바이족, 나무와 검은색 안료, 금속, 20C / 흑단처럼 깊고 고요한 색감의 이 가면은 단순한 탈을 넘어선다. 바이족과 주변 부족에서 이 가면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순간을 알리는 신호이자, 여성성과 우아함을 찬미하는 상징이었다. 놀랍게도 이 가면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사용하는 드문 존재다.
사회화 교육을 마친 소녀들을 축하하기 위해 열리는 무도회에서, 연장자 여성들이 소웨이를 쓰고 춤을 춘다.
그 춤 속에는 다산의 기원,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 공동체의 희망이 실린다. 우아하게 올려 묶은 헤어스타일, 높게 솟은 이마, 삼각형으로 단순화된 얼굴, 굵고 당당한 목. 이 모두는 바이족이 꿈꾸는 이상적인 여성상의 조각된 모습이다. 나아가 그 형상 너머엔 단순한 미의 기준을 넘어, 공동체가 전통을 물려주고, 세대가 연결되는 의식의 깊이가 숨어 있다.
2번째 작품: 가면(므와나쁘워), 초크웨부족, 앙골라, 나무 색소, 섬유, 20C / 앙골라의 초크웨족이 만들어낸 이 가면은 그 자체로 작은 무대다. 부드럽게 조각된 얼굴선, 가늘게 뜬 눈매, 섬세한 문신과 헤어스타일은 한 젊은 여성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이 가면을 쓰는 이는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펼치는 전문 무용수들이다. 이 가면외에 그들은 치마를 두르고, 깃털 장식을 달고, 심지어 가짜 가슴을 착용한 채, 조상의 여성성을 빌려 무대 위에 선다.
이 가면극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그 속에는 여성 조상에 대한 경의와 기억, 그리고 공동체가 이어가는 조화와 정체성이 담긴다. 나무와 섬유로 빚어진 이 작은 얼굴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조상과 후손, 남성과 여성, 인간과 신을 잇는 매개체로 다시 살아난다.
아프리카 예술을 접한 내 첫 느낌은 원초적인 본능이 살아있는 골계미였다.
본능에 충실한 인체 표현 중 일부분에 대한 과장과 우스꽝스러움은 우리를 무장해제하게 한다.
아프리카 조각에는 선명한 윤곽과 대담한 비례가 존재하고 집약된 형상은 단순함 속에 본질이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철학이 숨겨져 있다.
사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철학적이라는 명제는 나이를 보탤수록 확실히 느끼는 진리이다.
설명이 길수록, 사족을 붙일수록, 부족함을 감추려는 페인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을 바탕으로 한 샤머니즘 토대에서 인간의 부족함을 자연과 신을 숭상하고 매개체인 무당에게 나를 빙의하여 좀 더 나은 생활을 염원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나 싶다.
결국 결핍과 염원은 동전의 양면이니까.
(참고: 파란색 부분은 'MFA 아프리카 전시 코너'의 공식 영문 설명을 기초로 필자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내용입니다.)